*눈치 보지 않을 용기
'눈치'라는 이름의 개
by 김광훈 Kai H Oct 24. 2020
눈치라는 말이 우리말에만 존재하지는 않을 듯하다.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눈치 볼 일이 많은 나라도 그리 많지 않다. 예전 학창 시절에 미국인 교수의 사택에 가끔 방문하곤 했는데 그 개 이름이 '눈치'였다. 그땐 좀 특이한 이름이다 싶었으나 지금 생각하면 신의 한 수라 느껴진다. 개는 영리한 동물로 눈치가 빠르다. 집 안의 서열을 금세 파악한다. 그 '눈치'라는 개는 입양한 지 꽤 시간이 지났음에도 늘 눈치를 보곤 했다.
예전엔 윗사람의 눈치만 보면 되었지만, 요즘은 위아래 다 눈치를 봐야 하는 입장이라 삶이 더욱 고단해졌다. 선약이 있으면 신입 사원이라도 거리낌 없이 밝히고 회식에 불참한다. 그걸 두고 한 마디라도 했다가는 아제나 꼰대 소리 듣는 건 각오해야 한다. 예전 직장 선배가 하던 말이 새삼 떠오른다. 업무가 힘든 게 아니라고.
직장처럼 온갖 인연과 악연이 얽히고설킨 집단도 없을 것이다. 같이 근무한 인연으로 승승장구하기도 하고, 그 직장을 떠나지 않는 한 계속 걸림돌이 되는 일도 있다. 세상의 모든 굴레와 눈치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겠지만, 우리는 눈치를 보는 정도가 너무 심하다. 눈치를 보는데 익숙하고 아무런 불편이 없다면 괜찮겠지만, 실상은 대부분 그렇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어떻게 눈치를 안 볼 수 있을까. 너무나 다양한 상황이 존재해 구체적으로 적시할 순 없다. 하지만 가이드라인은 있다. 사랑, 직업, 취향 등은 전적으로 자신만의 개인적 특성(idiosyncracy)에 관한 사항이니 세상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 예전에 육군 중장 출신의 인사가 중령 진급을 못하면 비디오 가게를 할 생각이었다고 털어놓은 일이 있다. 직장 선배가 회사를 당장 그만두면 리어카라도 끌겠다는 이야기를 한 게 깊은 인상으로 남아있다. 극단적인 예지만 항상 대안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건 맞는 것 같다. 눈치가 필요하지만 모든 사람을 다 기쁘게 하려는 건 바보나 하는 짓이라는 말은 명심해야 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