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고향은 북한이다. 금강산 근처인데 외가가 지역 유지로 당시 공산당 입장에선 출신성분이 고약했던 모양이다. 외가는 북의 탄압을 피해 6.25 동란 전에 남하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말한 것처럼 우연한 만남이란 없는가 보다. 외할아버지는 한학자로 서당을 운영했고 병역 문제로 도피처가 필요했던 아버지는 그곳에서 수학했다. 아버지가 당시로선 드물게 서당 집의 셋째 딸과 연애를 했고 그녀가 나의 어머니가 되었다. 어머니는 언변도 뛰어나고 지적이었던 아버지를 만나 평생 호강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정반대의 삶을 살았다. 아버지가 안정된 직업을 가졌던 때를 제외하곤 읍내에서 두 번째 부잣집 안주인이 된 언니와 달리 도시빈민의 삶을 온몸으로 겪었다. 하지만 금슬은 지금 기준으로 보아도 매우 좋았다. 두 분이 크게 다툰 걸 본 적이 없다.
어머니께 점심이나 하자고 전화했더니 통화가 끝날 때쯤 고맙다는 말씀을 하신다. 순간 가슴이 좀 먹먹해졌다. 어머니 덕분에 내가 존재하는데 뭐가 고맙다는 것일까? 제대로 먹이지도 가르치지도 못했다는 자괴감 때문인가. 하지만 주어진 여건에서 전력을 기울였다는 걸 안다. 어머니는 어려운 형편 가운데서도 가족의 영양 공급에 늘 신경을 썼다. 아버지는 안정된 일자리를 가졌을 때 늘 최고 제품을 사주었다. 왕자표 파스는 32색으로 당시엔 초대형이었다. 어린이 잡지도 당시엔 인기가 높았던 어깨동무나 새소년이었다.
그런 시간이 오래 가진 않았지만, 난 그걸 잘 활용하진 못했다. 그림을 잘 그리지도 못했고 신춘문예에 응시하지도 않았다. 그래도 아버지가 자식에게 투자한 것 중 가장 큰 수확이 하나 있다. 영어를 갓 배우기 시작한 중학생에게 당시 국내 최대 어휘의 에센스 영한사전을 선물한 것이었다. 공자가 주역을 탐독해 죽간을 연결하는 위 편이 세 번 끊어졌다는 위편삼절이라는 고사도 있지만, 나도 꽤 튼튼한 표지가 너덜너덜해지다 못해 떨어져 나가도록 사전을 애용했다.
그 덕으로 학창 시절 영어 시간은 단 한 번도 지루하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최소한 영어 관련 시험에서는 많은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어머니 세대만 해도 자식이 입신양명하면 부모로서 최고의 행복이었다. 그런 기준으로 보면 난 표준에 크게 미달이다. 이젠 나름대로 생각이 정립되어 남들의 시선이나 잣대를 초월한 만큼은 지력이나 판단력이 생겼다. 하지만 마음 한 편에는 그분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회한이 없지는 않다.
포레스트 검프 어머니가 평소 지력이 다소 부족한 아들에게 남겨준 말은 다음과 같다. 인생은 상자 속에 든 초콜릿과 같다. 어떤 모양 어떤 맛의 초콜릿을 받을지 알 수 없단다." 이걸 우리 식대로 옮기자면 이런 말이 될 듯하다. "사람 팔자란 알 수 없으니 지금만 보고 실망할 거 없다." 인생은 생각보다 다채로운 반전을 늘 가지고 있다. 어떤 직업을 택하든지 후에 반드시 적지 않은 도움이 된다. 포레스트 어머니가 늘 하던 말씀이 또 하나 있다. “말은 말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힘을 가지고 있다.” 시간이 좀 걸리긴 해도 언젠가는 이루어지는 일이 적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