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탄핵 집회 모두 나를 위해 거리로 나왔다.

by 깅공돌

비상계엄 조치가 있었고 비상계엄 해제가 있었던 그 주 토요일에 여의도를 갔다. 공덕역에서 친구를 만나 여의도로 가는 5호선엔 사람들이 꽉 차 있었다. 예전에 2호선을 타고 강남으로 출퇴근할 때 느꼈던, 꽉 차 있는 열차를 또다시 타게 됐다. 하지만 출퇴근할 때 탔던 2호선 열차와 집회를 향해 갔던 5호선 열차는 달랐다. 짜증만 있던 2호선 열차와 다르게 5호선 열차는 비장함과 나름의 설렘이 있었다.


내가 괜히 그렇게 느낀건지 모르겠지만, 2호선 열차의 사람들과 5호선 열차의 사람들도 달랐다. 출퇴근 2호선 열차는 무선 이어폰을 연결한 스마트폰으로 영화나 예능을 보는 사람들이 꽉 차 있었다면, 5호선 열차의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보지 않고 멍하니 생각에 잠긴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좁은 공간 때문에 서로 몸이 부딪히면 온갖 짜증이 섞인 표정이었던 2호선 사람들과 다르게, 5호선 사람들은 묵묵히 서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왜 집회에 갔을까. 예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촛불집회 때 부산에서 올라와 서울 광화문 집회에 참석했었다. 그때는 역사의 현장에 참여해야 된다는 사명감(?)으로 참석했다. 더 정확히는 '역사의 현장에 나도 있었다'라는 자부심을 갖기 위해 3시간 가까이 되는 열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무서웠다. 12월 3일 윤석렬의 비상계엄 선포 후 다음날 새벽 국회에서 계엄이 해제될 때까지 떨리는 마음으로 TV와 유튜브 방송을 봤다. 계엄군들이 국회 본회의장 앞까지 와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는 뉴스를 볼 때 황당하면서도 무서웠다. "2024년에 우리나라가 다시 군사독재 시대로 돌아간다고?", "비상계엄이 위헌이든 말든 그냥 대통령이 군대 동원해서 국회 다 때려 부수고 국회의원들 잡아가면 독재가 시작된다고?" 이게 말이 되나 싶었다.


포고령부터 시작해, 많은 황당한 문장들이 날아다니는 밤이었지만 유난히 나에게 꽂히는 문구가 있었다. 정확히 어디서 이런 워딩이 나온지 모르겠다. "평범한 시민들의 일상은 통제되지 않는다". 말 안들으면 다 때려잡겠지만 개기지 않고 고분고분 살면 그냥 일상을 살게 해주겠다는 거다. 저 말에 내가 왜 꽂혔는지 안다. 계엄이 해제되지 않고 군사독재가 시작됐으면 내가 저렇게 살 거 같았기 때문이다. 목숨 걸고, 아니 거창하게 거기까지 안가더라도 내가 가진 것들에 많은 피해가 온다면 나는 과연 진실을 말하기 위해 나설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다.


"전두환 때가 서민들 살기는 좋았다" 예전에 엄마가 이 이야기를 했을 때 버럭 화를 낸 적이 있다. 엄마는 광주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죽고 고통받았는지 아냐고. 그때 광주가 아니라 부산이라도 그렇게 말할 수 있겠냐고. 그렇게 화를 내고 머쓱해 하는 엄마 앞에서 속으로 생각했다. "만일 부산에서 5.18이 일어났다면 나는 우리를 빨갱이라고 죽이려는 계엄군에 맞서서 싸울 수 있을까? 못하겠지... 나도 그냥 소시민이지 뭐..."


그래서 이번에 거리로 나왔다. 혹시라도 윤석렬이 돌아와 다시 독재와 같은 사태가 왔을 때, 총 든 군인 앞에서 싸울 용기가 없기 때문에. 그렇다고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평범한 일상을 살아갈 용기도 없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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