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의 도전
H는 고등학교 동창이다. 소싯적 대구 동성로 클럽골목에서 함께 새벽을 맞곤 했다. 각자 사회에 첫 발을 내딛고 가정도 생기면서 자연스레 멀어졌다. 마흔줄에 들어서서야 다시 연락이 닿았다. 나는 그를 마라톤의 세계로 이끌었다. 이제는 함께 밤을 지새울 체력이 남아있지 않았지만, 대회를 핑계 삼아 영덕과 봉화, 그리고 여수의 길위를 함께 달렸다.
이번 대구 대회는 그의 첫 풀코스 도전이었다. 나는 페이스메이커가 되기로 했다. 마음의 빚이 있었다. 그동안 그가 나를 따라 달렸던 하프코스 대회 대부분이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했다. 작년 6월 영덕은 한여름 같이 덥고 습했으며, 지난 1월 여수는 영하 10도 가까운 추위 속에서 가파른 언덕이 이어졌다. 그래도 그는 달리기를 놓지 않았다. 고마웠다.
대회 날 대구 스타디움에서는 4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였다. 늦겨울 치고는 공기가 따스했다. 우리는 B그룹에서 출발했다. 1킬로미터를 6분 30초 페이스로 달렸다. 4시간 30분 남짓에 완주할 수 있는 속도다. 7킬로미터 즈음 담티고개를 넘었다. 아직 H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달구벌대로에 들어섰다. 우리가 다녔던 고등학교 근처다. H는 이곳이 학원가로 바뀌면서 아파트값이 많이 올랐다고 했다. 추억이 빛바랐다. 범어네거리에서 왼쪽으로 꺾어 수성못으로 향했다. 어릴 적 살았던 황금동이 나왔다. 열 살 무렵 나는 자전거를 타고 동네 이곳저곳 탐험하고는 했다. 아직도 KFC가 있다. 어린 나는 그곳에서 혼자 비스킷을 사먹은 적이 있다. 그때 두근거림와 희열이 어제 일처럼 느껴졌다.
10킬로미터를 넘자 H가 페이스를 6분으로 올리자고 했다. 조금 불안했지만 알겠다고 했다. 몸이 풀리면서 자꾸 빨라졌다. 몇 번이고 시계를 보며 속도를 늦췄다. 이제 우리는 반월당을 지나 절반을 넘겼다. H는 뒤쳐지지 않았다.
평소 대회 때보다 조금 천천히 달리니, 시야가 넓어졌다. 일면식 없는 사람들이 나를 응원했다. 고사리 같은 손을 내밀어 하이파이브를 기다리는 아이들이 있었다. 한 명 한 명 손을 맞댔다. 부드러웠다. 백발의 어르신들이 화이팅이라고 외쳤다. 나도 힘내서 화이팅이라고 답했다. 힘이 났다.
이제 레이스는 후반부로 접어 들었다. 우리는 동대구역을 지나 동촌로에 들어섰다. 점점 더위가 느껴졌고 맞바람도 거세졌다. 페이스를 6분 20분 정도로 늦췄다. H는 1미터쯤 뒤에서 나를 따라왔다. 범안로로 방향을 틀었다. 이제 7킬로미터 남짓 남았다.
38킬로미터 즈음이었다. H에게 지금 속도라면 4시간 30분 이내도 가능하다고 했다. 그는 답이 없었다. 그리고 조금 뒤 더 이상은 못뛰겠다며 멈춰 섰다. 천천히 같이 달려보자고 했지만 그는 고개를 저었다. 우리는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속도를 높여 결승선이 있는 스타디움으로 향했다. 범안삼거리로 이어지는 악명 높은 언덕이 눈에 들어왔다. 맞바람도 더 거세졌다. 참가자들은 대부분 걷고 있었다. 남은 체력을 모두 쏟아야 할 만큼 힘든 주로였다. 힘들게 결승선을 통과했다. 4시간 20분에 조금 못 미치는 기록이었다. H가 걱정됐다.
결승선 근처에서 H를 기다렸다. 한 시간 가까이 지나도 찾을 수 없었다. 가까스로 연락이 닿았다. 그는 스타디움 바깥 벤치에 앉아있었다. 핏기없는 얼굴이었다. 4시간 45분 정도로 완주했지만, 너무 힘들어 연락하지 못했다고 했다. 좀 더 일찍 속도를 늦췄어야 했다는 후회가 남았다.
우리는 스타디움을 빠져나와 지산동으로 갔다. 돼지국밥으로 배를 채우고 사우나에 들렀다. 피로가 조금 풀렸다. 첫 풀코스 완주 때가 떠올랐다. 시간이 지날 수록 고통의 기억은 옅어지고 완주의 기쁨이 또렷해졌었다. H도 그럴 것이다. 헤어지며 그에게 말했다. “첫 풀코스 완주 축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