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r Gang Feb 06. 2020

영알못 탈출하기

아이는 2017년 8월 이곳에 와서 9월 시작할 때 영어를 한마디도 못했다. ABCD 알파벳 정도만 겨우 알정도 였고, 물론 한국에서 이민 결정이 나면서부터 걱정스러운 마음에 영어학원을 잠시 다니긴 했지만, 회화를 가르쳤을 리 만무하고, 단어 몇 개 아는 정도였을 것이다. 그러다 이주를 하고 한 달을 놀면서 그나마 알던 단어도 다 까먹었을 것이고, 그렇게 언어를 전혀 알지 못하는 채로 학교에 그냥 멍하니 앉아 있고, 선생님이 시키는 것을 눈치껏 따라 하는 정도였다.  


물론 당시에 부모로서 그런 아이가 안쓰러웠고, 그전에 미국에서 오래 산 선배들께 조언을 구했지만, 다들 "아이들은 머리가 스펀지라 금방 따라가요. 걱정하지 마세요"라는 게 일반적인 중론이었고, 물론 그 점을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고 거기에 대한 희망도 있었지만 지금 처해진 상황을 보건데, 고통스럽고 학교 갈 때마다 눈물바다가 되는 것을 볼 때마다 어쩌지 하는 생각들 수밖에 없다. 


미국의 대부분이 비슷한 형태를 띠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일단 Maryland의 Worcester Public School에서는 ESL 프로그램이 있다. 그래서 학생 중에서 Non native가 있으면 그 학생들에게 별도의 영어교육을 시킨다. 학교 입학 전 미리 영어 테스트를 보는데, 당연히도 전체 영역에서 '평가불가'였다. (한마디도 할 수가 없었기에 평가가 안 되는 것이다.) 들어보니 학교 수업을 듣다가, 오후에 30여분 정도 별도로 나와서 ESL 선생님과 함께 영어수업을 하는 방식이다. 다른 county는 조금 상황이 다를 수도 있는데, 이곳은 Native speaker가 거의 99%를 차지 하기에 ESL 프로그램을 듣는 학생 수가 극히 적다. 그래서 1~2명을 두고 선생님이 수업을 진행한다. 수업방식은 특별히 교과서가 있거나 한 건 아니고 그때그때 선생님이 가지고 있는 자료를 바탕으로 수업을 진행한다.  


학기가 시작하기 전에 미리 ESL 프로그램 참여 인원을 대상으로 Picnic을 했는데, 초중고등학교를 통틀어도 ESL 프로그램을 듣는 학생수가 그리 많지 않았다. 물론 이뿐만 아니라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ESL 프로그램도 County에서 운영을 한다.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아이는 여전히 영어는 못했지만, 눈치껏 생활하는 법을 터득한 것으로 보였다. 일과가 어떤 식으로 운영되고 이 시간 다음에는 어떠한 시간이고 대략의 룰은 어떻고 하는 등. 1학년 수업은 수업 내용 자체가 그리 빡빡한 편이 아니고 대부분 그림을 그리거나, 책을 읽거나, 글쓰기 연습을 시키기에 오히려 더 수월하게 따라간 것으로 보인다. 아이가 다니는 Showell Elementary는 Reading과 Writing을 상당히 강조하는데, 그림일기를 쓰고 그 내용을 글로 쓰는 연습을 첫 한 학기 동안 계속해서 하는 모양이었다. 


언어를 못하니 아이는 자연스레 빈 종이에 그림만 그리고 있었고, 밑에 글 쓰는 칸은 항상 빈칸이었다. Parent-Teacher Conference (학부모 상담) 날이 되어 담임 선생님을 만나니 아이가 여전히 대화는 못 알아듣고 있다고 했다. 다만, 그림을 너무 상세히 잘 그린다는 칭찬을 빼놓지 않았다. 그러면서 선생님은 아래 한글로 라도 (선생님이 못 읽지만) 그 내용을 써보라고 이야기를 해달라고 나에게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한동안 아이는 그림 그리고 그 밑에 한글로 그 내용을 설명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학교에서 혹시나 화장실을 간다던지, 몸이 어디가 아프다던지 이런 상황을 대비해서 별도의 노트를 준비해서 한글과 영어 두 가지를 써놓고, 아이에게 혹시나 이런 말이 필요하면 이 문장을 선생님께 보여주라고 이야기를 하기도 했고 (사실 결론적으로 거의 쓰지 않았음), 이러한 모습이 아마 아이의 엄마가 보기에는 안쓰럽고 답답했던지, 나에게 아이패드 같은 걸로 간단한 영어사전을 쓸 수 있게 하면 어떠냐는 말을 했고, 학교 선생님께 이야기를 해보니 아이패드를 별도로 하나 아이를 위해서 준비해주긴 했는데, 학교에서는 가능하면 쓰지 않을 것을 당부했다. (사실 이 부분은 나도 동의했다. 오히려 아이가 영어에 적응하는 것을 늦추지 않을까 생각을 했었다). 사실 수업시간에 방해도 되고 하기에 거의 쓰지 않았다고 했다. 


학교가 Reading을 강조하기 때문에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책을 주어 읽도록 했는데, 숙제가 매일 30분씩 책 읽는 게 다이다. 그리고 이것을 Reading log를 만들어서 기록하게 했는데, 되던 안되던 계속 책을 접하게 했다. 물론 처음에는 한 장을 이해하는데 시간이 엄청 걸렸고, 그래서 가끔 나 스스로 짜증내기도 했는데, 위에서 선배들이 말했듯 아이들은 머리가 스펀지라고 두어 달 지나자 정말 놀랄 정도로 빠르게 아주 간단한 책은 읽을 수 있었다. 물론 모든 것을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대략의 내용은 파악할 정도가 되었다. 1학년의 경우는 글보다 그림이 크고 많아서 사실 글을 몰라서 쉽게 따라갈 수 있는 책이 많았던지 이해하는데 그리 어려움을 느끼지는 않은 듯했다. 매일 이렇게 30분씩 글을 읽으니 1학년이 끝날 때 즈음에는 짧은 챕터북을 읽기 시작했고, 학교에서도 놀랄 정도로 빠르게 적응한다고 했다.  


아무래도 노출이 중요하고, 곧 같이 노는 친구가 생겼는데, 그 친구랑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 말을 또 습득하고 이런 과정이 시간이 지날수록 가속도가 붙은 것으로 보인다. 또 집에서 한 것 중에 하나는 네플릭스에서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수준의 만화를 저녁 먹으면서 짧게 짧게 봤는데 첫째 (7살) 둘째 (2살)가 금방 타이틀 송을 따라 부르는 것을 보고, 정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2학년 중반이 되면서 (미국에 온 지 일 년 반)부터는 오히려 한국어를 잊어버릴까 걱정할 정도가 되어 버렸으니, 정말 아이들은 스펀지인가 보다. 첫째는 영어에 대해서 거의 0 수준에서 2년 만에 ESL 프로그램이 필요가 없을 정도의 영어실력을 갖췄다 (학년 수업을 충분히 따라갈 만큼의 언어 능력을 갖춤). 둘째의 경우에도 처음에는 말도 안 되는 단어만 늘어놓더니, 사람들이 쓰는 용법을 따라 하더니 금방 Leaves are falling down 같은 문장을 만드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물론 조바심에 과외를 한다던지 좋은 교재를 살 수도 있지만, 적어도 내가 관찰한 바에 따르면 어떠한 책이든 쉽게 읽을 만한 것부터 해서 하루에 30분 정도만 꾸준히 책을 읽게 한다면 생각보다 금방 아이들은 영어에 익숙해진다는 것인데, 그래서 그런지 도서관에 가 보면 출판사 별로 레벨이 표시된 책들이 가득하다. 그래서 자신이 맞는 수준의 책을 아주 쉽게 접할 수 있다. 한국에 있는 한 친구가 아이 영어교육에 대해서 한번 물어본 적이 있는데, 나의 대답은 간단했다. "비싼 교재 살 필요 없고, 서점에서 (혹은 중고로) 아이 레벨에 맞는 책을 사서 매일 30분씩 읽혀라."라는 것이다.  


지금은 미국에 온 지 2년 반이 지났는데, 혼자서 Harry Potter를 읽고 있다. 물론 아마 모르는 단어가 반은 될 텐데도 대략의 줄거리는 충분히 이해할 정도의 읽기 능력을 갖춘 듯 보인다. 지금도 학교에서는 매일 30분씩 책을 읽기를 강조하고, 이제는 으레 책 읽는 게 습관화되어 있는 것을 보면 이것보다 더 나은 방법이 있을까 싶다.  

사실 어른도 하루에 30분~1시간 정도 꾸준히 책을 읽는 다면 언어를 수이 학습할 수 있을 텐데 문제는 바로 '꾸준히'라는 것에 있다.



출처: https://07701.tistory.com/155 [강박의 2 cents

매거진의 이전글 스쿨버스와 도시락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