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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 Gang Feb 03. 2020

스쿨버스와 도시락

한국도 비슷하긴 하지만, 학교 입학 원서를 내면서 등교와 하교 방법을 묻는다. 학교 카운셀러와 이야기를 하면서 이를 정하는데 등교와 하교는 크게 부모가 직접 혹은 스쿨버스를 이용하는 방법이 있다. 스쿨버스는 얼마 전 한국에서도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스쿨버스가 정지하고 아이들이 등차 혹은 하차할 때 'STOP' 사인이 펼쳐지는데 이때는 양쪽 차량 모두 통행이 금지된다. 


아이가 아직 영어도 제대로 못하는데 스쿨버스를 태운다니 주변에서 다들 '용감하구나' 이런 표정으로 쳐다보신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미국에서도 학교생활의 드라마는 이 스쿨버스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처음에 이 결정을 할 때는 어차피 새로운 환경에서 적응할 거 반창고를 확 땐다고 생각하자는 생각에서 그렇게 하자고 했었다. 사실 언제든지 바꿀 수도 있긴 하지만, 거꾸로 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아서.. 


그래서 아이는 그 어려운 첫날의 시간을 보내고 바로 다음날부터 스쿨버스를 탄다. 미리 연락을 받고 약속된 장소로 시간을 맞추어 가니 몇몇 학부모와 아이들이 있다. 그때부터 또 큰 딸아이는 큰 눈에 눈망울이 글썽거린다. 아마도 어제처럼 오늘도 무슨 말인지도 모르는 곳에서 혼자서 오랜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을 것이다. 부모로서 나 역시 안타깝지만, 아이가 이겨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 중에 Ray Charles의 일대기를 다룬 Ray라는 영화에서 보면 어릴 때부터 앞을 보지 못하는 Ray의 앞날을 걱정한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며, 도와달라는 Ray를 외면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는 아마도 앞으로 앞을 보지 못하고 살아가야 하는 아이가 이겨내길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와 같다고 하면 거창하지만, 그런 느낌이 유사하게 들었다.  


그렇게 아이는 스쿨버스에 몸을 실었고, 창밖으로 슬픈 눈망울과 함께 나를 바라보며 학교로 등교를 했다. 이날은 하교까지 스쿨버스를 하기로 했는데, 어제와 마찬가지로 조마조마 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아마 도착하기 15분 전부터 스쿨버스가 도착하는 곳에서 안절부절못하며 아이가 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가 이윽고 도착하고 제일 마지막에 아이가 나타나는 것이다. 의외로 밝은 얼굴로, 스쿨버스에서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고 하고 자기는 무슨 답변을 할 수 없었다고 했다. 하루가 지났지만 친절한 선생님 덕분에 한결 익숙해진 얼굴이었다. 

다음날 다시 스쿨버스를 타는 시간은 오고 같은 시간에 버스를 타는 곳으로 가니 또 눈망울이 울먹거린다. 속으로 이제 언제까지 가려나 마음이 안쓰럽기도 하고 그냥 태우지 말까? 너무 많은 부담을 주는 건가? 하는 내적 갈등으로 가득한 순간 근처에서 함께 기다리던 한 여학생이 (두 학년 위인 듯) 울먹거리는 딸아이 곁으로 오더니, "학교 가는 게 무서워?" 하고 묻는 것이다. 아이는 눈을 멀뚱 거리며 보고, 내가 대신 "이 아이가 한국에서 와서 영어를 몰라서 힘들어한다"라고 하니, "(해맑은 얼굴로) 나도 처음에는 학교가기도 싫었고 그랬는데, 가다 보니 괜찮다"라고 하면서 토닥거리는 것이다. 그러면서 버스가 도착하자, 아이는 그 언니의 손을 붙잡고 버스에 오르기 시작했고, 그날 오후에 그 언니와 함께 하교하였다. 내가 그 아이의 엄마에게 네 아이 덕분이 우리 아이가 학교에 씩씩한 게 간다며 감사하다고 몇 번을 이야기했는지 모른다. 


당신의 아이는 정말 친절하네요


.



그렇게 점차 아이는 적응을 하기 시작했고, 일주일이 지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날 "나 친구가 생겼어" 하는 것이다. 이 감동적인 이야기는 다음에 더 하기로 하고, 첫째 딸은 입맛이 완전 한국식이다. 라면을 좋아하고, 설렁탕을 좋아한다. 치즈는 싫어하고 빵도 그리 즐기지 않는다. 아무래도 거의 99%가 백인인 아이 학교에서 몇 안 되는 동양인으로 살아가야 하는데 더군다나 미국 음식을 싫어하니 자연스레 한국 음식을 도시락으로 싸주었다. 이를 위해서 주변 분들에 엄청나게 묻기도 하고 조언을 구했는데, 안 되는 실력으로 도시락을 준비해주며 혹시나 밥 냄새를 아이들이 싫어하지나 않을까 고민이 많았다. 인터넷을 뒤져 다른 분들이 올려놓은 도시락 사진을 보기도 하고 만드는 법을 배우기도 하고 그렇게 도시락을 준비해 주었다. 적어도 이걸로 놀림받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그렇게 학교생활이 익숙해졌을 무렵, 아이가 밥을 항상 남겨오는 것이 아닌가. 왠지 불길한 생각이 머리를 감싸고 그날 밤 자려고 누운 아이에게 조심히 물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다른 아이들이 냄새난다고 하고, 뭐냐고 하면서 이상한 얼굴을 짓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밥을 제대로 못 먹고 뚜껑을 열고 닫으면서 먹는다는 말을 했다. 이 말을 듣고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아, 답답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고 또 이런저런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날 밤 잠을 못 이루다. 담임선생님께 장문의 메일을 썼다. 대략 요약하자면 "우리 아이가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하더라, 그런데 나는 그 다른 아이에게 서운함이 있는 건 아니다. 아이들은 솔직히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학교의 인종 다양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대부분 백인) 학교에서 다양한 문화에 대한 교육은 필요하다고 본다."는 정도의 메일을 썼다. 완곡하게 썼지만 아이가 겪는 문제에 대한 답답함을 이렇게 밖에 이야기할 수 없었다. 나 역시 어떠한 솔류션이 있는지 몰랐기에, 


다음날 하교를 하고 돌아온 아이가, "내일 교장선생님이랑 같이 밥 먹는데"라고 하는 것이다. 그것이 무슨 말이지? 나는 혼란스러웠다. 교장선생님과 함께 밥을 먹은 날 저녁 아이가 설명하는 점심시간을 듣고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에게 아무래도 선생님이 어떠한 행동을 하고 뭘 먹는지는 아주 큰 본보기가 된다. 내가 쓴 메일을 받은 담임선생님은 교장선생님께 공유를 하고 아이가 쌀(밥)을 먹는다는 사실은 안 교장선생님이 담임선생님을 비롯한 몇몇 선생님과 함께 다음날 다 같이 쌀이 들어간 도시락 (초밥)을 싸오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큰 딸과 함께 점심시간에 같이 쌀이 들어간 점심 도시락을 모든 아이들이 보는 가운데 함께 먹었다는 것이다. (보통은 선생님은 함께 먹지 않음) 


전교생이 모두 그 광경을 봤을 것이고 몇 안 되는 동양인인 딸아이뿐만 아니라 선생님들도 쌀이 들어간 초밥을 먹는 것을 다 쳐다봤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는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들에게 이런 게 있다고 말을 전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고, 영상 자료를 보여줄 수도 있었을 것인데, 직접 행동으로 보여주신 것이다. 물론 이것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지만, 그렇게 까지 해주었다는 사실이 우리에게는 상당히 감동이었던 것이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도 아이는 여전히 한국 입맛을 유지하고 있고, 매일 같이 밥이 들어간 도시락을 들고 학교에 등교한다.



출처: https://07701.tistory.com/150 [강박의 2 c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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