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예전 박사과정 때 알게 된 지인과 우연히 연락이 닿았다. 잠시 그때로 돌아갔다. 박사과정 간 초기에는 적응하느라 정신을 못 차렸지만, 곧 졸업과 졸업 후 진로에 대한 걱정으로 아주 조그마한 정보도 얻을까 싶어 학회에서 유명한 교수의 꽁무니를 쫓아서 어떻게든 말 한번 붙여보려고 하거나, 다른 박사과정 생들과 동병상련의 마음을 공유하며 정보를 주고받기도 한다. 그러는 과정에서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과 알게 되기도 하고 상황이 상황인지라 마치 전장의 동료처럼 친해지기 마련이다. 그분도 그렇게 알게 된 분 중에 한 분이었다.
반가운 소식 가운데 본인이 학자감인지 고민이 있었다며, 지금은 한국에서 업계에서 일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학자감...
이 단어는 사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상당히 많은 박사를 하고자 하는 분들이 가지는 고민 중에 하나이다. 물론 그 단어 자체에 박사과정이나 앞으로 연구자로서의 삶에 대한 불안감과 두려움, 걱정이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 군대를 갔다 왔다면 조금 늦은 나이이긴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인생의 젊은 나날들을 도서관에 갇혀서 책에 묻혀서 살아야 하기에 그런 고민을 안 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학자감인가?
사전에 따르면 학자는 "학문에 통달하거나 학문을 연구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한국에서 어릴 적부터 자주 듣는 말 중에 하나가 "공부 다했냐?" 하는 부모님의 끊임없는 질문에 어느 날 "예!"라고 하면 "어떻게 공부를 다하냐?"며 되물어 보는 아버지의 말씀에 왠지 억울하기도 하고, 왜 나는 열심히 했는데 안 알아주시는 거냐며 속상해한 적이 있을 것이다. 그 트라우마 때문일까? 아니면 우리가 자라오면서 들었던 공자, 맹자의 사상가 들이나 칸트, 소크라테스, 플라톤과 같은 위대한 철학자(학문가) 들 때문인지? 공부, 학문이라는 건 무엇인가 대단한 것인 것 같고, 무형의 그것이지만 왠지 나를 주눅 들게 만드는 게 사실이다. 한국사회가 공부로 학생을 줄 세우고 공부를 잘하면 뭔가 면제부를 받는 듯한 분위기 때문인지, 그게 뭔지는 모르지만 무엇인가 엄청난 '무형의 룰' 혹은 '무엇의 그것'임은 분명한 것 같다. 사실 그것 때문에 한국이 작은 인구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유학생을 미국으로 보내는 이유 이리라 생각한다.
사람마다 저마다 다른 기준이 있고 이런 질문에 대답하는 방법이 있지만, 나의 경우를 이야기해보자면,
07701.tistory.com/category/한국교수%2C%20미국교수%20되기 에서도 이미 충분히 이야기를 했지만, 못하는 것도 아니었지만, 동네에서 소문날 만큼 공부를 잘하여 모든 학부모들의 입에 오를만한 학생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리고 학부를 마칠 때 즈음만 하더라도 더 이상 공부는 안 한다고 마음먹을 정도였으니, 대략 어떤 상황일지 독자들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학자의 길을 가야겠다'라고 마음먹고 지금 그 길을 가고 있는 건 공부와 학문이라기보다는 그 직업이 가지는 특성 때문이었는데, 어릴 적부터 내가 좋아하는 책 읽는 게 좋았고, 호기심이 있는 편이었던 것 같고, 어른이 되어서는 돈 적당히 벌면서 일 년에 내가 쓸 수 있는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게 어디 있어!!)라는 생각을 하다 교수라는 직업을 알게 된 덕분이다.
물론 박사과정을 하면서 '나는 학자 감인가?'에 대한 고민을 안 해본 건 아니다. 박사과정에 입학을 하면 큰 산을 넘은 것 같지만, 사실 그 뒤에 에베레스트 산을 마주하기 이전에 동네 뒷동산을 넘었을 뿐인데도, 어깨에 잔뜩 뽕이 들어가 미국 대학에 '나는 박사과정 유학생이야'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가득 찬 채 시작하기 때문인데. 곧 엄청난 대가들과 세계에서 난다 긴다 하는 공부 잘하는 사람들 속에서 그 근거 없는 자신감은 온데간데없기 십상이다.
그 자괴감이 사실 꽤나 큰데, 그때마다 나는 나에게 이런 주문을 하였다. "뭐, 한국에서 직장 생활하는 친구들도 이 정도의 스트레스는 받잖아? 내가 돈은 못 벌지만 그래도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혹은 것을) 하고 있잖아?"라는 생각을 되뇌었다. 또 이런 말이 위안이 되는 게 박사과정을 하기 전에 다녔던 회사의 일들이 상당히 힘들고 누구를 위해서 일하는가 하는 질문을 수백 번도 더 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래서 그런지, 평범한 능력에도 조금씩 조금씩 해나갈 수 있지 않았을까..
UNIST는 참 좋은 학교이다. 객관적으로도 주관적으로도 그렇다. 좋은 학생들과 소박하지만 예쁜 캠퍼스 열정 있는 젊은 교수들, 그곳에서 생활하면서 내가 그곳에 소속해 있다는 생각에 부담도 있었지만 뿌듯함으로 열심히 하기도 했었다. 다만, 연구에 대한 부담감이 큰 학교라 연구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고, 저널에서 리젝 레터를 받을 때마다 저 학자감인가? 하는 질문을 계속하게ㄹ 되고, 한국 특유의 스피디한 속도에 따라서 몰려오는 성과에 대한 압박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지금 미국의 학교 역시 참 좋은 학교이다. 다만, UNIST와 성격이 다를 뿐이다. 바쁘게 돌아가는 한국 사회를 그대로 담고 있는 대학이었다면, 이곳은 동네의 여유로움과 느린 속도처럼 완전히 정반대의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정년에 대한 부담(Tenure track 교수들은 Tenure를 받지 않으면 학교를 옮겨야 한다, 그 기준은 학교의 추구하는 방향에 따라 다르다)이 적고, 한국처럼 부수적인 일을 꼭 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사실 아직 미국을 잘 몰라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것도 있다).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한국에 있을 때에 비해서 나의 삶의 속도 또한 아주 많이 느려졌다. 그러면서 가족들과의 시간, 그동안 할 줄 몰랐던 집안일이라던지, 한국에서는 전혀 고민하지 않았던 집안팎 관리 라던지 등등 새로운 것들을 매일매일 배우며 살고 있다.
물론 그러다 보니, 진짜 연구(혹은 공부)라고 생각하는 것 - 논문 쓰기, 학문분야 관련된 책 쓰기, 읽기 등등 -에 대한 속도는 현저하게 떨어지고 꽤 멀리 떠나온 것 같다. 그것이 초기 미국에 전혀 다른 분위기 도시와 학교에 왔을 때 꽤나 상실감을 주기도 했고, 지금도 완벽히 떨치지는 못했다. 하지만, 연구(혹은 공부)라는 것이 꼭 전공 분야에 국한될 필요는 없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새가 어떻게 집을 짓고, 알을 까고, 새끼가 커가고 둥지를 떠나는지, 집에 전기가 나갔을 때는 어디를 체크해봐야 하고, 언제 씨앗을 뿌리고, 식물이 잘 자라는지, 등등 새로운 것에 대한 공부(혹은 연구)를 계속해나가고 있는 내 자신을 본다. 물론, 그리고 직업이 교수인지라 전공 분야에 대한 공부는 계속하지만 그 형태나 동기부여가 해야 해서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자연스레 하고 싶어서 한다는 느낌과 새롭게 무엇인가 해볼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자연스레 하게 되었고, 그 연장 선상에서 '조강의 4 cents'라는 팟캐스트도 진행을 하면서 매번 새로운 사람들과 소식을 가지고 고민하고 공부를 하고 연구 아이디어를 얻고,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생기면 연구를 천천히 진행해가고 있다.
나 역시 아직 진행하는 과정이고 한 획을 그은 대단한 학자가 아니라 평가하기는 이르지만, 한국과는 완전히 다른 템포로 훨씬 더 길게 보고 돌을 하나하나 오랜 시간 올려 돌탑을 쌓고 있는 건 분명한 것 같다. 그렇게 하다 보면 언젠가 나도 좀 알아주는 사람이 되어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서 오늘도 이것저것 지식 방황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 대상이 달라서 그렇지 누구나 학자감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게임이 궁금하고, 어떤 사람은 해외에서의 삶이 궁금하고, 어떤 사람은 연애를 잘 하는 방법이 궁금하고... 자신이 무엇인가에 궁금하거나 호기심이 있다면 그 자질은 다 있다고 생각한다. 학자감 이라는 부담스러운 단어가 아니라 '나는 이것이 궁금하고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가능성은 열려있고 또 할 수 있지 않을까?
오늘도 이 고민을 하는 당신! 그만 고민하라 당신은 그럴 자격이 충분하다.
출처: https://07701.tistory.com/174 [강박의 2 c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