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냄새

찬란한 여름 같던 엄마의 향기

by 관희

나는 엄마 냄새를 좋아했다. 낮잠 자다 깼을 때 베개에 남아 있던 냄새. 밭에서 돌아온 엄마의 옷자락에 묻어 있던 흙냄새와 비누냄새가 섞인 그 묘한 향기. 그 냄새를 맡으면 괜히 안심이 됐다. 세상에 무서운 게 없던 시절이었다. 병실에서 맡는 엄마의 냄새는 달라졌다. 소독약 냄새와 땀 냄새가 뒤섞였다. 하지만 가끔, 아주 가끔, 고개를 가까이 대면 어릴 적 그 냄새가 스쳤다. 엄마는 환자복을 입었지만 여전히 나를 키우던 그때 그 사람이었다.


내가 유독 좋아했던 엄마의 냄새가 있다. 미용실 파마약 냄새였다. 엄마는 머리를 감을 때 샴푸를 세네 번 짜낼 정도로 머리숱이 많았다. 내가 아주 어릴 적부터 엄마는 외출할 때 화장은 못해도 꼭 머리를 빗거나 핀을 꽂았던 기억이 난다. 흰머리 동네 할머니들은 그 검고 풍성한 머리칼을 부러워하기도 했다. 엄마는 더운 여름이 다가올 때쯤이면 짧은 단발에 파마를 하곤 했는데, 단골이었던 읍내 미용실에서만 꼭 파마를 했다. 그때 엄마한테는 주유소 기름 냄새 같은 진한 파마약 냄새가 났다. 아마 미용실에 오래 묵혀둔 파마약 냄새였을 것이다. 나는 그 고약한 파마약 냄새와 엄마의 살냄새가 합쳐진 오묘한 향기를 유독 좋아했다.


항암치료는 그런 점에서 나에게 아주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이었다. 머리를 삭발해버려야 하는 탓에, 당분간은 물론 앞으로 더 이상은 엄마의 파마약 냄새를 못 맡을 수도 있었다. 그래도 처음 몇 달간은 약한 항암을 해서 머리카락이 많이 빠지지 않았다. 하지만 병원엔 온통 머리를 전부 밀어버린 환자들만 가득했기에 엄마도 겁이 나는 모양이었다. 매주 하는 의사 선생님과의 면담에서 엄마는 아주 오랜만에 사적인 질문을 했다.


"선생님 머리가 안 빠지는 환자도 있나요?"
- "그것도 약 나름, 사람 나름입니다."
"그럼 계속 약한 걸로 해주시면 안 될까요?"
- "우선은 그렇게 해드릴 건데, 지금 머리카락은 문제가 아닙니다."


그날 엄마는 다섯 손가락으로 연신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고 빗어댔다. 그 모습이 마치 마지막 단장을 하는 사람처럼 안쓰러웠다. '머리카락'에 대해서 엄마는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을지 궁금했다. 엄마에게 머리를 밀게 되면 어쩔 거냐고 물어봤다. 생각보다 대수롭지 않게 '어쩔 수 없지 뭐'라고 답하는 엄마가 더 슬퍼 보였다. 엄마는 마음에 들지 않거나, 속상할 때 유독 대답이 짧아지기 때문이다.


나는 엄마의 머리카락만큼은 빠지지 않기를 바랐지만, 결국 엄마의 머리카락이 베개 위에 고양이 털처럼 뭉쳐지게 되었을 때쯤 삭발을 하기로 했다. 특히 균과 위생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 백혈병이었기에 의사 선생님의 권유도 있었다. 어디서 삭발을 하면 좋을까, 나는 근처에서 가장 위생적인 미용실을 찾아보았다. 하지만 엄마는 한사코 단골이었던 읍내미용실로 가자고 했다. 여름이면 짧은 단발에 파마를 하던 그곳이었다.


엄마는 차를 타는 것 자체를 힘들어했지만, 기어코 차로 50분이나 걸리는 미용실로 향했다. 조심스럽고 어렵게 발을 내디딘 엄마는 나의 부축을 받으며 한 걸음씩 박자를 맞춰 걸었다. 미용실 문을 밀어 열자 청아한 소리의 마중 종이 울렸다. 미용실 아주머니는 단골인 엄마의 소식을 이미 전해 들었는지, 반가움과 안쓰러움, 안타까움이 뒤섞인 표정을 잠시 지어 보였다. 엄마는 머리카락을 깔끔하게 밀어달라고 말했다. 아주머니는 바리깡을 몇 번이고 소독하며, 엄마에게 미용 가운을 살포시 덮어주었다. 아주머니는 왜 그렇게 되었는지, 어디가 아픈 건지 따로 묻지 않았다. 그저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단골손님의 머리카락을 아주 조심스럽게 쓰다듬을 뿐이었다.


엄마의 민머리를 그날 생전 처음 보았다. 고맙다는 말을 뒤로한 채 엄마는 일어났고, 아주머니는 조심히 가시라고, 꼭 건강해지라고 말끝을 흐리며 인사했다. 미용실 밖으로 나오자 엄마는 까칠한 머리를 쓰다듬으며 시원하다고 연신 후련한 듯 이야기했다. 나도 꽤 잘 어울린다며 누구든 항암을 하면 삭발을 해야 한다고 말을 거들었다. 생각보다 슬퍼하지 않는 엄마를 보니 퍽 마음이 안심됐다. 머리카락이 사라졌음에도 엄마는 여전히 엄마였다. 냄새는 바뀌었지만 나를 안심시키는 사람은 그대로였다.


어쩌면 내가 좋아했던 건 파마약 냄새가 아니었다. 세상에서 가장 찬란했던 여름 같은 엄마의 향기였다. 머리카락은 없었지만, 나를 안심시키는 말과 다정한 눈빛에서는 여전히 향기가 났다. 그리고 향기는 사라지는 게 아니라, 아름다운 기억 속에 깊이 배어지는 걸지도 모른다. 나는 여전히 찬란한 여름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오던 엄마의 냄새를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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