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엄마랑 같이 울어보기

아프고 슬픈 게 사랑을 멈추게 하지는 않으니까

by 관희

간병을 하다 보면, 사람은 생각보다 쉽게 부서진다. 나는 엄마를 지키고 있다고 믿었지만, 사실은 매일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다. 간병을 하면 밤은 낮보다 훨씬 길다. 삐걱거리는 간이침대는 숙면을 도와주지 못하고, 링거를 확인하러 들락날락하는 간호사 발소리에 1시간 간격으로 잠에서 깬다. 사실 그것보다 새벽 내내 통증으로 신음하는 엄마를 보고 있으면 고작 잠자리가 불편한 내 모습조차 미안해서 잠을 잘 수가 없다.


엄마의 통증은 내가 조절할 수 없었지만, 내 표정은 조절해야 했다. 엄마는 눈치를 많이 봤다. 원래 여장부처럼 씩씩한 사람이었다. 내가 졸린 눈을 비비며 다리를 주물러 주면 엄마는 마치 죄인이 된 듯 조용해진다. 암이 엄마를 죄인으로 만들었다.


어느 날은 엄마가 내게 물었다. "엄마 때문에 많이 힘들지?" 나는 당연히 힘들지 않다고 말했다. 오히려 엄마랑 같이 있는 시간이 많아져서 좋다고 말했다. 그 말을 하는 동안, 나는 내가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믿고 싶었다. 엄마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눈은 쉽게 믿지 못하는 사람의 것이었다. 엄마는 늘 그랬다. 내가 거짓말을 하면, 모르는 척해 주는 사람이었다.


나는 엄마 앞에서만큼은 무너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보호자는 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새벽 세 시쯤, 엄마가 잠들어 있는 걸 확인한 뒤 나는 병실 화장실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게 수도를 틀어놓고 거울을 보며 한참을 서 있었다. 지키고 있다고 믿었는데, 사실 점점 엄마에게 기대고 싶어졌다.


간병은 누군가를 붙잡는 일이 아니라 스스로를 다잡는 일이었다. 엄마는 통증을 견디고 있었고 나는 슬픔을 견디고 있었다. 사람은 아픈 사람 앞에서 자기감정을 접어두는 법부터 배운다. 그리고 그 접어둔 감정은 다시는 펼치지 않는 서랍 속 오래된 일기장이 된다. 괜찮은 척, 버틸 수 있는 척, 아무렇지 않은 척. 그렇게 접어둔 감정은 다시 펼칠 기회를 잃고 오래된 영수증처럼 습기를 먹고 조용히 변색된다.


보호자는 강한 사람이 아니라, 강한 척을 하는 사람이다. 엄마는 아픈 몸으로 나를 걱정했고, 나는 멀쩡한 몸으로 엄마 앞에서 괜찮은 얼굴을 연습했다. 서로를 지키겠다고 애쓰는 동안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조금씩 닳아가고 있었다. 어쩌면 간병이란 누군가를 살려내는 일이 아니라 함께 무너지지 않기 위해 버티는 시간인지도 모른다. 엄마가 잠든 얼굴을 오래 바라보다가 나는 처음으로 생각했다. 이 사람이 내 엄마이기 전에, 그저 작은 소녀였다는 걸. 그리고 나는 엄마의 아들이기 전에 그저 겁이 많은 한 소년이었다는 걸.


그 밤 이후로 나는 무너지지 않으려 애쓰기보다 조금은 솔직해지기로 했다.


완벽한 보호자가 되지 못해도 괜찮다.
힘들다는 마음을 인정해도 사랑이 줄어드는 건 아니다.
사랑은 버티는 힘이 아니라 같이 흔들려주는 용기일지도 모른다.
앞에서 울지 않는 것이 사랑이 아니라, 같이 흔들리면서도 손을 놓지 않는 것이 사랑일지도 모른다.


그날 이후 나는 엄마를 지키는 사람으로만 서 있지 않기로 했다. 가끔은 엄마의 손을 붙잡은 채 내 마음도 같이 붙들어 보았다. 보호자는 강해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 끝내 떠나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그제야 알았다. 오랜 시간이 흘렀고 우리는 퇴원했다. 많이 걸으라는 의사의 말에 엄마랑 산책을 했다. 그때 우리는 처음으로 같이 울었다. 진심으로 서로의 슬픔을 위로해 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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