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피가 쏟아졌다. 병명은 골수이형성증후군에서 백혈병이 되었다. 혈액암 중에서도 가장 독한 녀석이다. 엄마의 작은 코에서 빨간 선지 같은 피가 울컥 쏟아져 나왔다. 몸을 앞으로 기울여 피가 목뒤로 넘어가지 않도록 엄마의 어깨를 잡았다. 반합 같은 트레이에 쏟아지는 피를 받아냈다. 어느새 충혈된 눈에도 피가 고였다. 엄마는 괜찮다며 어깨 위에 올려진 손을 잡아끌어내렸다. 엄마의 등을 쓰다듬었다. 환자복은 비에 젖은 듯 땀으로 흥건했다.
간호사들은 긴급한 듯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을 내뱉으며 서로 소통했다. 그때가 주말이었던 탓에 대처할 수 있는 인원이 그리 많지 않은 듯했다. 결국 담당 의사가 부랴부랴 엄마의 병실을 방문했다. 엄마를 '고장 난 자동차'라고 불렀던 노의사였다. 엄마보다 더 야윈 백발의 노의사는 처음엔 썩 믿음직스럽진 않았다.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엄마가 유일하게 기댈 사람이었다.
나중에 엄마가 말하기를 그 노의사도 위암을 겪은 환자였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금 병원으로 돌아와 또다시 암과 싸우고 있었다. 노의사는 매일 엄마를 보러 오고, 퇴근 전에는 꼭 상태를 체크하고 퇴근했다고 한다. 그리고 주말인 지금도 병원 진료실을 지키며 환자들을 돌보고 있었다. 그때 왜인지 울컥하고 감사한 마음이 뱃속 단전 깊은 곳에서 올라왔다. 의사라는 직업은 단순히 실력만으로는 그 자리와 명예를 지킬 수 없음을 느꼈다. 그는 엄마에게 묵묵히 사랑을 전하는 히포크라테스 그 자체였다.
엄마가 코피를 너무 심하게 쏟아내니 결국 이비인후과 협진을 통해 지혈을 하기로 했다. 우리가 생각하는 지혈은 간단히 피를 틀어막는 것이지만, 백혈병 환우에게 지혈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엄마의 작은 콧구멍에는 셀 수도 없이 많은 솜들이 하나, 하나, 하나 들어갔다. 처음엔 그 숫자를 세다가 '억억' 대면서 고통스러워하는 엄마를 보니, 가슴이 미어졌다. 지켜보는 나조차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엄마와 나는 손을 꼭 붙잡았다. 눈을 꼭 감은 채 서로를 바라봤다.
다시 병실로 돌아왔을 때, 엄마는 누울 수도 없었기에 그날은 하루 종일 침대에 앉아있었다. 엉덩이가 너무 아파서 자주 자세를 바꿔봤지만 소용없었다. 엄마를 아기처럼 품 안에 꼭 안아주고 싶었다. 엄마는 코에 넣은 솜 때문에 말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엄마와 나는 침묵 속에서 불편한 자세를 함께 바꿔가며 힘든 시간을 버텼다. 그래도 괜찮아지는 중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어둑한 저녁이 되었을 때쯤,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손짓으로 혹은 몸짓으로 충분히 대화가 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간신히 피가 멈춰서 코 속에 솜을 빼기로 했다.
엄마랑 나는 그 힘든 시간을 버티고 말을 잃었다. 그제야 스쳤던 건 비릿한 피 냄새와 엄마의 땀 냄새였다. 이제 말을 할 수 있음에도, 서로를 위로할 수 있음에도, 우리는 불어오는 산들바람을 살결로 느끼듯 조용히 서로의 시간을 보냈다. 서로에 대한 애틋한 사랑과 고마움을 침묵에 담았다. 별일 없었다는 듯 태연히, 그리고 고요히 보내던 그때 노의사가 다시 찾아왔다.
"간신히 지혈은 했지만 앞으로 더 조심하셔야 합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제가 뭘 했습니까, 다 환자분께서 이겨내신 겁니다"
커튼을 치고 돌아서는 노의사의 뒷모습을 보며, 엄마와 나는 다시 침묵했다. 말이 사라진 병실에서 우리는 서로를 가장 또렷하게 사랑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