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 남은 것
엄마가 아픈 이후로 우리 집은 매일 택배가 왔다. "OO목사의 청국장 가루, OO박사의 직접 짜낸 당근비트 건강주스, OO약사가 만든 해초 추출물" 이름도 생소한 건강식품들이 현관문 앞에 쌓여 발에 치이기 일쑤였고, 결국 거실까지 밀려 들어왔다. [누가 좋다더라, TV에 나왔다더라, 이거 먹고 나았다더라] 엄마 병과 연관된 사연만 나오면 모조리 사놓고 쟁여놨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 눈에 띄는 변화는 없었다.
나를 포함한 누나들은 엄마가 암환자가 된 이후에 엄마를 깨끗한 곳에서 살게 해야 한다는 강박이 생겼다. 젓가락부터 변기까지 엄마 살결이 닿는 모든 곳은 필수로 소독을 했다. 아프기 전에는 아무렇지 않던 집이 그날 이후로는 모두 불안의 대상이 되었다. 그런 극성맞은 자식들 때문에 엄마는 한시도 편히 누워있지도 못했다. 엄마가 소파에 누워 TV를 보고 있으면, 우리는 괜히 소독제를 가져와서 리모컨을 닦았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벗고 있던 마스크를 다시 쓰며 괜찮다며 손사래를 쳤다. 우리를 안심시키려는 몸짓 같았다.
우리는 엄마가 위암과 혈액암을 가진 환자였기 때문에 면역에 더욱 예민할 수밖에 없었다. 안 좋게 되신 분들은 대부분 패혈증에 걸려 사경을 헤매신 분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는 엄마를 살리기 위해 바빴다. 하지만 정작 엄마는 우리를 안심시키기 위해 더 바빴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아빠 역시 매일이 고통이었다.
아빠는 나름 엄마를 챙긴다며 이것저것 사와 먹여주곤 했는데, 가끔 암환자가 먹어선 안 되는 자극적이거나 위험한 음식들을 권할 때가 있었다. 물론 전부 엄마가 좋아하던 것이었다. 자식들이 그런 모습에 귀 따가운 잔소리를 쏟아부으면 아빠는 방으로 피해버리기 일쑤였다. 아빠도 보호자는 처음이었다. 실수는 많았고, 우리는 예민했다. 서운함은 늘 아빠의 몫이었다.
우리는 무엇이든 해야만 할 것 같았다. 뭔가 하지 않으면 우리가 무책임한 자식이 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집 안은 점점 더 약과 건강식품과 청소 계획들로 가득 찼다. 격려보다는 지적이 많아졌고, 웃음보다 슬픔이 우리를 감싸고 있었다. 문득 그냥 흩어져 있던 예전의 우리 집이 더 편안했던 건 아닐까 생각했다. 너무 끈끈하게 뭉쳐서 엄마를 살려보겠다는 의지가 서로를 힘들게 하고 있던 것 같았다. 엄마는 우리가 싸우지 않고 웃던 날을 더 좋아했을지도 모른다. 리모컨을 소독해 주는 게 아니라, 그냥 옆에 나란히 앉아 TV를 봐주기를 원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 서툴렀던 시간을 생각해 본다. 엄마는 비싼 영양제보다 우리가 옆에서 웃던 날에 더 숨이 놓였을 것이다. 우리는 늘 '무엇'을 더 해줄지 고민했지만, 엄마가 원했던 건 함께 있는 시간 그 자체였다. 생일날 케이크는 사라져도, 옆에서 웃던 얼굴은 오래 남는 것처럼.
엄마에게 남았던 건 닦여 있던 리모컨이 아니라 그 옆에 나란히 앉아 있던 우리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