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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관홍 Sep 08. 2021

아직도 하고 싶은게 뭔지 모르겠어요


최악의 케이스다


하고 싶은 게 있으시다는 것조차도 부럽네요.
전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하고 싶은 게 없어요.



진로와 직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였다. 그 자리에서 나는 유일한 '퇴사인'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퇴사를 예정에 두고 있거나, 이직, 사이드 잡을 고민하고 있었다. 각자 자신들의 고민을 소탈하게 나누었다. 마치 직업이라는 배 위에 올라탄 사람들이 다음 항로를 고민하는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나는 배에서 내린지 벌써 6개월이 지났고, 조각배를 타고 망망대해에 표류중이었다. 문득 이야기를 나누면서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선명해졌다. 내가 여기에서만큼은 제일 답이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방황하는 사람들 중의 최악의 케이스가 아닐까? 가고 싶은 길이 많아서 선택을 고민하는 사람이거나, 하고 싶은 일이 현실의 벽에 부딪히는 사람을 부러워하는 처지였다. 나는 아무런 길도 없는 사막에서 제자리에 서있는 미아였다. 말그대로 최악이었고 괴로워해도 나아지는 건 없이 시간은 무심히도 흐르고 있었다.



내가 이럴 줄은 몰랐죠



올해로 만 30세가 되었다. 이제 공식적으로 삼십대로 분류되는 사람이란 소리였다. 뉴스 인터뷰라도 한다면 이제 이름 옆에 괄호하고 30이라고 적힌다는 말이다. 그것은 내 의지와는 무관한 일이었다. 지금 여기의 서른살의 나는 어렸을 적 막연하게 상상했던 모습과는 전혀 다르다. 그 당시 내가 떠올린 내 모습은 이런 느낌이었다.


 - 지적이고 사려 깊은 사람

 - 전문 분야에서 착실히 성장하고 있는 사람

 - 안정적인 연애 2년차

 - 집에서 독립하여 혼자 사는 고독을 즐기는 도시인

 - 미래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자기계발인


하지만 현실은 너무나 달랐다. 들쑥날쑥한 감정 기복과 사회적 불안이 힘들어 심리상담을 받고 있으며, 개발자를 그만두기로 하며 불안감에 매일밤 울면서, 매번 시작도 못하는 연애에 외로워하고, 여전히 부모님과 집에서 같이 살고 있다. 뭐라도 되어있을 줄 알았는데 아무것도 되지 않은 채로 서른살이 되어버린 것이다.



답은 지나온 길에 있다는데...


현재의 모습은 지난 선택의 결과다. 내가 좋아하고 마음이 끌리는 일을 다시 되찾기 위해선 과거를 되짚어 볼 수밖에 없다. 나를 발견하기 위한 근거는 경험에서 찾아야 했다. 인생 타임라인을 작성해보았다. 한 번에 작성하기 어려운 긴 호흡의 작업이기 때문에, 느긋한 마음으로 나를 찾아 여행을 떠난다고 생각했다.


지나온 삶을 돌아봤을 때 기억에 남는 순간들을 다 적어본다.


1. 살아있다는 감각을 느꼈던 순간


2. 잊고 싶지 않은 순간


3. 알을 깨고 나왔던 순간 (세계가 넓어진 순간)


4. 인상적인 '처음'의 순간


적다보니 앞이 캄캄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순간들이 없다니 내 20대는 어떻게 된 것인가. 20대의 대부분을 낭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세상이 무서워서 방으로 도망쳤던 나에게 기억에 남을만한 순간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간신히 기억을 더듬어 적어본 순간들은 사막 같았다. 풀 한포기 없는 사막에서는 앞으로 나아갈 힌트를 찾기 어려웠다.



자기탐구와 객관성 사이에서


한여름부터 늦여름까지 나를 탐구하는 시간을 가졌다. 잘 하는 것, 좋아하는 것, 타고난 것 등 여러 가지를 나열해보기도 했고 그것들의 교집합도 탐색해보았다. 나를 설명하는 키워드를 무의식적으로 적어보면서 내 안의 가능성을 열어보기도 했다. '나에 대한 나의 생각'을 글로 적으면서 탐구하는 시간이었다.


혼자만의 공간에서 나를 탐구하는 시간은 소중했다. 다만, 나의 경우에는 부족한 경험이 발목을 잡았다. 며칠간 <자기발견 워크숍>을 혼자서 진행해도 얻는 힌트는 제한적이었다. 20대 초반때처럼 다양한 경험을 무작정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에, 실험과 프로젝트 그리고 집중이 필요했다. 우선 혼자서 적기만 하는 자기탐구는 일단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내가 어떤 사람인 것 같나요?"라고 물어보면서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나의 가능성의 힌트를 발견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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