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리원에서 가장 놀라운 순간은 아이들을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우리가 직접 돌봐야 하는 순간이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찾아온다는 점이다. 아이들 면회 시간에 그냥 아이들을 조리원 방 침대 위에 두고 간다. 어떻게 안아야 하는지, 보자기는 어떻게 해줘야 하는지 미처 익숙해지기도 전에 아이들을 직접 대면하니 난감한 순간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럴 때마다 전화하거나 아래층 조리원 선생님들에게 물어보러 왔다 갔다 하는 일들이 종종 있었다. 그러다 이틀이 지나고서부터는 물어보지 않고도 아이들을 대면하기 시작했다. 사진도 좀 찍어주고 부모님들과 영상통화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조리원 생활부터는 내가 아내와 아이를 보는 시간이 한정된 주말뿐이었다. 아이를 모두 조리원에서 돌봐주는 시기에 굳이 아까운 출산 휴가를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 그렇게 선택했지만, 조리원 기간 풀 타임으로 남편의 조리를 받는 아내들을 아내는 내심 부러워했던 것 같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그런 감정도 사치일 수 있었다. 조리원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기간 부모 모두 최대한 푹 쉬고, 집에 돌아가서는 쌍둥이 육아에 온전히 집중하는 게 좋다는 이야기는 수없이 들었다. 주말에만 조리원에 가다 보니 아내는 여전히 그곳에 갇혀있어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그럼에도 병실 생활에 갇혀있다가 나오니 일상생활이 더 소중하게 느껴졌다.
그러다 어느 날 회사에서 퇴근하고 아내를 보러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자전거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조리원에서는 코로나 검사 확인서를 가지고 와야만 조리원 출입이 가능했기 때문에 병원에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조리원 바깥에서 서서 아내를 기다렸다. 마침, 아내가 전화를 받지 않아서 하염없이 서서 기다렸다. 조리원 창문에서 바로 보이는 곳이 마을버스 정류장이었기에 의도치 않게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는 것처럼 정류장에 계속 서 있었다. 30분은 지났을까, 아내가 드디어 전화를 받아서 창문으로 인사를 나눴다. 서로를 마주하며 전화 통화를 하는데 뭔가 애틋한 마음이 들었다. 요즘 시대에 자유롭게 출입하지 못하는 곳이 어디 있을까, 우리 부부는 결혼 후부터는 언제든 보고 싶을 때는 보고, 말하고 싶을 때는 말해왔는데, 조리원의 정책 때문에 강제로 떨어져 지내야 했다. 나는 조리원 건물 아래 버스 정류장에, 아내는 조리원의 좁은 창문 틈으로 서로를 바라보면서.
아내를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비가 너무 많이 쏟아졌다. 집으로 가는 버스가 없어 비를 맞으며 계속 걸었다. 오늘은 아내를 보기 위해서 갔다가 우산도 없이 비를 홀딱 맞고 왔다. 앞으로도 아이들을 위해 비를 맞으며 바쁘게 달려야 하는 순간들이 다시 찾아올 것 같다는 생각이 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