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날이 지나고 병실에서의 생활이 시작됐다. 병원 정책상 바깥으로 나갈 수도 없고, 면회객이 찾아올 수도 없었다. 작은 병원 내에서는 복도나 작은 정원 외에는 더 이상 갈 곳도 없다. 신생아실에 있는 아이들을 면회 갈 때 빼고는 병실에서 TV를 보며 시간을 때우는 것이 전부였다.
나는 다행히도 노트북을 가져온 덕분에 급한 회사 일도 처리하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병원 복도 산책을 할 수도 있었지만, 아내에게는 고욕인 시간이었을 것이다. 아내는 출산을 앞두고 갑자기 경부 길이가 짧아져서 입원했을 때도 그 무료함을 견디기 힘들어했는데, 이번에는 대소변을 보러도 혼자 갈 수 없는 상황이고 쉽게 움직이지도 못하니 꼼짝없이 갇혀 있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특히나 옆에서 보호자가 소변을 주기적으로 갈아줘야 하고, 화장실도 동행해서 모든 일을 도움으로 받아야 하니, 아내로서는 아무리 남편이라도 부끄러움을 비롯한 여러 감정이 섞여 있는 듯했다.
제왕절개는 우리 부부가 임신과 출산을 상상하면서 생각해 보지 못한 옵션이었다. 쌍둥이임신 소식을 알고 나서부터 아내는 쌍둥이 자연분만과 제왕절개를 열심히 찾아봤는데 여러 의견이 있었지만, 다른 무엇보다 쌍둥이 자연분만을 하기 위해서는 다른 산부인과 병원을 가야 하고, 그곳은 설명이 필요 없는 전종관 교수님이 있는 병원이여야 했다. (지금은 이대목동 병원으로 집에서 금방 갈 수 있는 병원에 계시지만, 당시에는 서울대병원까지 가야만 했다.)
같은 날 자연분만으로 출산한 옆방 산모가 복도를 열심히 걸어 다니는 것을 보고 아내는 더 부러워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인내를 하면 시간은 지나가고 결국 끝이 다가온다. 아직도 걸음은 불편했지만, 마음은 가볍게 병실 생활을 정리했다. 병실을 빠져나오면서 드는 기분은 드디어! 라는 기분이 먼저였다. 그러고 나니 빡빡한 교대 근무 속에서도 항상 웃음과 친절로 대해주신 간호사 선생님들께 감사한 마음이 떠올랐다.
연결 층을 통해 옆 건물인 조리원으로 넘어갔다. 사실 병실부터 걸음 수로 따지면 50걸음도 걸었을까? 우리는 조리원 문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