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이벤트나 당일 날 아침은 차분하다 못해 무겁게 가라앉는다. 약간 긴장되기도 하다. 무언가 끝나고 시작하는 ‘인생의 챕터가 넘어가는 순간’ 임이 온몸으로 느껴진다. 현재의 챕터는 어떻게 마무리가 되고, 다음 챕터의 시작에는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걱정과 기대가 같이 섞인 그런 순간. 결혼식이 그랬고, 지금은 출산을 앞둔 아침이 그랬다.
‘병원에 가장 먼저 도착해 1순위로 출산’하고 싶다는 아내의 소망을 들어주기 위해 아침 8시부터 병원으로 향했다. 불필요한 주차비를 내지 않기 위해서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아내는 조리원이 끝나야 집에 올 수 있을 테니, 거의 3주 뒤에나 집에 돌아올 수 있다.
병원에 가서 여러 서류 절차와 대기를 끝내고 수술실이 있는 3층으로 향했다. 이제까지의 경험상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는 내 생각이나 의도대로 진행되기보다는 자연스럽게 흘러가버리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출산도 그렇게 될 것 같았다. 내가 무엇을 하든 상관없이 자연스럽게 흘러서 지나가버리는.
대기실에 어떤 남자와 같이 앉아있었다가 이름을 불리고는 수술실 안으로 들어갔다. 다음은 내 차례인가 싶었다. 한참을 조용한 공간에 앉아있다 보니 긴장이 풀리면서 졸음이 오려고 할 때쯤, 아기의 우렁찬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다른 울음소리가 들렸을 때, 우리 모모와 봉봉이 울음소리라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생각해 보니 왜 드라마나 영화에 나온 것처럼 분만실에 같이 못 들어간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어디 물어볼 곳이나 사람도 없었다. 이후에도 다른 소리가 들릴까 봐 분만실에 가까운 것 같은, 울음소리가 들렸던 방향으로 가서 앉아있었지만, 1시간이 지나도록 다른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시간에 대한 감각이 무뎌진 그 조용한 대기실에 문이 열리고, 아내 이름을 부르며 보호자를 찾았다. 안으로 들어가니 아내는 아직 안 보이고, 아기들이 카트에 실려 나오고 있었다. 카트가 나에게 오기까지 그 짧은 순간에도 내가 상상했던 아기들과의 첫 만남과는 차이가 있어 여러 생각이 들었다. 누가 이야기해 준 적은 없지만 남편이 수술복 입고 수술실에서 산모와 손을 맞잡고 같이 울다가 핏덩이들을 받아서 탯줄을 자르는 모습을 상상했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수술복도 없고, 수술실에도 들어가지 못했다. 산모는 만나보지도 못하고, 아기들은 탯줄도 잘려있고 비교적 깨끗한 얼굴로 만났다. 왜 그렇게 느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기들이 쿠팡 로켓 배송처럼 나에게 온 것 같았다.
아기들은 정말 손바닥 크기만 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 수가 없었다. 카트를 밀고 온 간호사는 아이들을 안아보라고 재촉했다. 이렇게 작고 연약한 신생아들을 내가 안아 들 수 있을까? 내가 떨어뜨리지 않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아기를 안았다고 보기보다는 아기를 조심스럽게 들어 올렸다. 간호사 분은 정해진 코스가 있는 것처럼 아이들을 차례로 안으라고 하고 내 휴대폰으로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 시작했다. 둘 중에 모모는 태어날 때부터 눈을 떴다고 하는데, 우리의 첫 조우에서도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물론 태어났을 때 시력이 없다는 건 알지만, ‘내가 아빠야’라는 말에 나를 향하고 있는 그 눈동자를 보면 뭔가 울컥하는 마음이 생긴다. 간호사 분이 정해진 루틴을 마치고 시간이 다 됐다며 다시 카트를 끌기 시작했다.
아기들과 첫 만남이라는 이 중요한 순간 내가 무언가 빠뜨린 건 없는지, 후회할만한 건 없는지 돌이켜봤다. 하지만 이미 첫 만남의 장소와 시나리오부터 내 오랜 예상을 멀리 벗어나 있었기에, 멀어져 가는 카트를 그냥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아내는 아이들을 제대로 보긴 했을까, 수술은 어땠는지 듣고 싶었지만 그 뒤로도 한참은 더 대기실에서 기다린 끝에 만나서 병실로 올라갔다. 어찌 보면 반나절 동안 떨어져 있었던 것인데, (평소에 서로 출근했을 때는 12시간 가까이도 떨어져 있던 건데) 정말 오랜 시간 만나지 못한 사람처럼 할 이야기가 쌓여있었다. 출산이라는 같은 사건을 두고 아내와 나는 10달 동안도 다른 경험을 해왔지만 적어도 옆에는 붙어있었다. 다만, 출산일은 서로 전혀 다른 공간과 시간에서(아이들 얼굴을 보자마자 수면마취에 들어갔다고 한다.) 서로의 관점에서 겪은 일들을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냈다.
저녁 시간에 다시 아이들을 면회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이제는 유리 벽을 사이에 두고 정해진 시간 동안만 만날 수 있다. 서로 소통할 수도, 아이들은 우리를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지만, 그냥 말 걸고 보고 싶었다. 정해진 시간은 금방 지나갔다. 다른 아이들보다 2~3주는 빨리 세상에 나왔지만, 큰 문제없이 건강하게 태어나서 대견했다. 우리 면회시간 앞 뒤로도 다른 아기들도 여럿 보았는데, 우리 모봉이가 귀여운 걸로는 제일 귀여워 보였다. 우리도 이렇게 자기 새끼가 제일 이뻐 보이는 1일 차 부모가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