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주 차 0일. 회사 행사 때문에 인천 파라다이스 호텔에 왔다. 원래 회사일정은 하루 숙박하는 일정이지만, 아내의 출산을 이유로 나만 당일치기로 일정을 잡았다. 오후에 발표와 회의를 끝내고 저녁까지 기다렸다가 식사를 하고 떠나기로 했다. 다른 분들은 체크인하고 방에서 쉬거나 각자 취미 생활을 하러 떠났다. 숙박 일정이 없는 나는 숙소도 없고 다른 놀거리는 챙겨 오지를 못했다. 하는 수 없이 다른 분들의 방에 머물까 하다가 좀 민폐인 것 같아서 아무 계획도 없이 바깥으로 나왔다. 나는 그렇게 평생을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살고 있다. 조금이라도 불편해할 것 같으면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친하게 다가가려는 시도도 나이가 들면서 줄어들며 아무래도 고립되는 성향이 있다. 아이들은 나의 그런 면을 닮지 않길 바란다. 세상 바깥으로 나아가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사랑하며 행복하게 지내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는 부모로서 아이들을 밝고 환하게 키우고 싶다.
남은 시간을 호텔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나중에 아내와 아이들과 다시 와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차에 가서 한숨 잤다. 발표를 준비하면서 새벽까지 잠을 제대로 자지도 못했고 발표가 끝난 뒤 긴장도 풀려서 차 안에서 불편한 자세로도 잠을 푹 잘 수 있었다. 저녁 회식을 했지만, 오늘 집으로 돌아가야 했기에 술은 먹지 않았다. 아이들을 키우는 분들과 같은 자리에 앉다 보니 자연스럽게 아이들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나의 계획과 예상을 벗어나는 일이 많다는 것이다.
회식을 끝내고 나가는데 많은 사람들이 악수를 하기도 하고, 포옹을 해주기도 했다. 다들 술을 한 잔씩 하셔서 그런 것도 있었겠지만 평소에는 이야기도 잘하지 않는 분들과 그런 작별인사를 나눠서 더 특별했다. 마치 입대 전 날의 주변 사람들의 반응과 비슷하달까? 차를 운전해서 집에 돌아오는 길에 자꾸 그 작별 인사들이 생각났다. 내가 1주일 넘게 출산 휴가를 쓰기 때문일까? 아니면 이제는 고된 육아 세계에 들어가는 것을 걱정해서였을까? 그것도 아니면 이제 정말 어른이 됐다는 그런 인사였던 걸까? 이제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나도 다음 사람이 똑같이 다음날 아내 출산 때문에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야 한다면, 그렇게 안아줬을지도 모른다. 아마 회사였으면 아무런 이벤트도 없었겠지만, 그곳은 타지였고 우리는 지친 하루를 온전히 같이 보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작별인사를 받으면 새로운 세상으로 한 발씩 뻗어가고 있다.
37주 차 1일. 우리 부부에게 단 둘이 보낼 수 있는 마지막 2일, 토요일과 일요일이다. 예약한 병원이 출산 입원/조리원 입소를 위해서는 아직도 당사자와 보호자의 코로나 음성 결과를 요구하여 신속 항원 검사를 하는 구로보건소로 찾아갔다. 2년 전만 해도 늘 검사를 받던 코로나 신속 항원 검사가 꽤나 오랜만이었다. 코로나 검사 이후에는 원래 지난번 정기검진 이후 가려고 했던 여의도 IFC몰에 가서 우리 부부가 좋아하는 판다 익스프레스를 먹으러 갔다. 먹으면서도 주변에 있는 아기들한테 시선이 갔다. 우리는 언제쯤 이곳을 올 수 있게 될까? 가늠하기 어려운 부분은 상상으로 채울 수밖에 없다. 아기 2명을 동시에 데리고 나오는 건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37주 차 2일. 오늘은 출산 전날. 따라서 멀리 나가지도 않고 집에서 조용히 출산 가방을 다시 한번 점검하고, 아이들이 바로 사용할 가제 손수건 등을 세탁하는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는 가볍게 아파트 단지 내를 한 바퀴 쓱 돌았다. 이 아파트에 처음으로 집을 보러 왔을 때, 계약을 했을 때가 얼마 전 같은데 지나간 해를 생각해 보면 벌써 3년이 지났다. 언젠가 아이들과 이 아파트 단지를 유모차로, 걸음마로 걷다 보면 그때 다시 오늘을 떠올릴 것 같았다. 아이들이 태어나기 하루 전인 10월 29일 바로 이 순간. 그때는 가족이 2명이었던 지금을 어색하게 느껴지겠지? 북적이는 4인 가족은 어떤 느낌일까? 미래에는 이 순간을 추억하겠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지만, 지금으로서는 네 가족이 함께하는 미래는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기 어렵다. 언젠가 오늘을 떠올릴 때, 우리는 좋은 부모가 되어있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