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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마저 소비의 대상이 되다

윤고은, 《밤의 여행자들》

by ENA

씁쓸하고 무섭다.

애나 로웬하웁트 칭의 《세계 끝의 버섯》을 읽으며 자본주의의 끈질기고도 교묘한 확장성에 감탄(?)했는데, 이번에는 바로 그 자본주의의 무섭게 치열한 모습을 보았다.


재난이 여행 상품으로 기획한다는 것 자체부터가 현대 자본주의가 아니라면 상상하기 어렵다. 어떻게 많은 사람들이 삽시간에 생명을 잃고 터전이 파괴된 땅을 ‘돈’을 주고 가서 ‘관광’한다는 것일까... 싶지만 그것이 ‘돈’이 된다면 당연히 뛰어들어야 할 일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재난의 참혹함이 시들하게 보이기 시작하면 퇴출의 대상이 된다. 재난의 참혹함을 어필할 수 없는 여행상품 프로그래머의 운명도 마찬가지다. 바로 무이라는 동남아시아의 한 섬의 상황이 그렇고, ‘정글’이라는 재난 전문 여행사의 프로그래머 고요나의 처지도 그렇다.


소설 속의 이름들부터가 명명백백히 무엇인가를 암시하고 있다. 여행사의 이름이 ‘정글’이라는 것도, 주인공의 이름이 ‘요나’라는 것도(기원전 8세기 이스라엘의 예언자 이름이기도 하지만, 히브리 말로 비둘기를 의미한다), 무이의 리조트 이름이 ‘벨에포크’라는 것도, 여행사에서 무엇인가가 잘못되었다는 의미가 ‘파울’과 무이에서 보이지 않는 지배자처럼 군림하는 ‘폴’이 연결되는 것도. 고요나가 사랑에 빠지는 현지인의 이름이 ‘럭’이라는 것도. 소설가는 이렇게 명명해 놓고 그들의 운명이 정해져 있다는 듯 이야기를 전개시켜 나간다.


이 소설에서 가장 흥미로우면서도 치가 떨리는 지점은 재난이 상품이 되었다면, 그 재난이 상품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의 사람들의 반응이다. 사람들은 재난을 기획한다. 인근의 다른 재난을 부러워한다. 그래서 더욱 극적인 재난의 시나리오를 짜고 배역을 배정한다. 배역을 배정받은 사람은 이렇게 사는 것보다 몇 푼의 돈을 쥐고(아니 가족에게 건네주고) 기꺼이 역할을 수행하기를 원한다. 이런 썩을 세상이... 하고 비난하기에는 너무나도 절박한 것이다. 악역을 맡은 이도, 희생 대상이 되는 이도, 그리고 그 가운데서 중립적이고도 애를 쓰는 고요나도.


그리고 더욱 곱씹게 되는 것은 기획한 재난이 아니라 실제로 재난이 밀어닥친 후, 다시 재난을 소비하는 방식이다. 당연히 재난은 돈이 되어, 여행 상품이 되고, 거기에 고요나라는 (사라진) 존재 역시 상품의 중요한 요소가 되어 버린다. 이 무슨 아이러니인가 싶지만, 그 아이러니 때문에 자본주의가 존재하고, 사람들이 그 속에서 살아가기도 하고, 죽어가기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소설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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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읽고서야 이 소설이 《The Disaster Tourist》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2021년 영국추리작가협회가 선정하는 대거상을 수상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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