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물림의 일본 유학생. 어렸을 적 결혼한 아내를 두고 일본에서 공부한다는 핑계로 자유로운 삶을 즐긴다. 그에게는 빼앗긴 나라의 백성이라는 자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자신의 인생을 좌우할 만큼의 커다란 의미를 지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자신을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러던 와중, 1918년 만세운동이 있기 전해 고국의 아내가 병중이라는 소식을 듣고 귀국한다(아마도 무오년 독감, 바로 스페인독감이었을 것이다).
"사실 말이지, 나는 그 소위 우국지사(憂國之士)는 아니나 자기가 망국 백성이라는 것은 어느 때나 잊지 않고 있기는 하다. ... (생략) ... 그러나 또 한 편으로 생각하면 망국 백성이 된 지 벌써 근 십 년 동안, 인제는 무관심하도록 주위가 관대하게 내버려 두었었다. ... 일본으로 건너간 뒤에는 간혹 심사 틀리는 일을 당하거나 일 년에 한번씩 귀국하는 길에 하관에서나 부산, 경성에서 조사를 당하고, 성이가시게 할 때에는 귀찮기도 하고 분하기도 하지마는, 그때뿐이요, 그리 적개심이나 반항심을 일으킬 기회가 적었었다."
염상섭은 소설에서 이 청년의 귀국 과정과 고국에서의 짧은 행보를 쓰고 있다. 민족의식이라고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청년은, 사회주의와도 독립운동과도 아무런 관련도, 관심도 없었지만 일본에서도, 조선에서도 형사들은 그의 짐을 검사하고, 심문한다. 단지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그런 그의 눈에 조선인의 삶이 보이기 시작한다. 멸시받는 조선인들, 자꾸 밀려나는 조선인 거주지들이 자꾸 보이는 것이다. 조선의 현실은 비루하고, 나아가 처참하다. 그래서 ”무덤이다. 구데기가 끓는 무덤이다!“고 외치게 된다. 현실을 애써 외면하던 그에게 어느 순간 조선은 바로 그런 공동묘지가 되어 있던 것이다.
소설은 지극히 은밀하다. 이 소설은 원래 1922년 7월에 《신생활》에 ‘묘지’(!)라는 제목으로 연재를 하다 3회 만에 검열로 삭제되었다. 일제도 이 소설이 무엇을 겨냥하는지 보였던 것이다. 그러다 2년 후에야 《시대일보》에 <만세전>이란 이름으로 연재될 수 있었고, 고려공사에서 단행본으로 출판되었다. 그리고 해방 이후 1948년 수선사에서 재간행된다. 내가 읽은 글누림출판사에서 낸 《만세전》은 고려공사와 수선사의 것을 함께 이어놓았다. 그래서 두 판본을 모두 읽을 수 있는데, 스토리는 그대로인데 느낌이 많이 다르다. 1920년대의 《만세전》이 오래된 古書를 읽는 느낌이라면 1940년대의 《만세전》은 현대소설을 읽는 느낌이다. 우리의 글과 말이 그 사이에 그토록 바뀐 것인가 하는 놀라움이 들 정도다. 두 판본의 소설을 함께 읽을 게 괜한 일인가 싶기도 했지만, 그만한 소득이 있다.
앞에서 이인화가 조선의 현실을 인식하게 된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독립운동에 뛰어들지도 않을 것이고, 민중과 함께 하지 않을 것이다. 아마 그럴 것이다. 그의 인식은 분명히 엘리트의 것이고, 그래서 엄연한 한계를 지닌 것이었다. 이 소설이 뛰어난 소설이라고 한다면(분명히 그렇다!), 바로 그런 것까지 염두에 두고 비판하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