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지오노의 《지붕 위의 기병》에서는 콜레라가 배경으로 등장하는데, 《영원한 기쁨》에서는 한센병(나병)이 배경이다(《영원한 기쁨》이 먼저 나온 작품이긴 하다). 《영원한 기쁨》에서 한센병에 걸린 사람들은 황량한 지역에 고립되어 살아간다. 그들은 거친 삶을 살아가고 있는데, 보비라는 낯선 사람이 찾아오면서 그들의 삶의 행태가 변하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함께 식사를 하고, 농사를 지으면서 공동체를 인식하기 시작한다. 그와 더불어 이른바 ‘문둥병’도 낫기 시작한다.
그 시작이 사슴을 데려오면서라는 설정과 다른 동물들과의 교감이 자주 등장하는 것은 이 소설의 신비주의적 경향을 드러내고 있으면 공동체적 삶으로의 지향은 어쩌면 기독교적 사회주의적 이상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노동을 통해서, 연대를 통해 병이 낫는다는 설정은 과학적이라고 할 수 있다(아직 항생제가 등장하기 전이다). 작가가 문명의 질병(즉, 한센병)을 극복하는 데 어떤 것이 필요한지에 대한 생각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 가운데 남녀 간의 복잡한 사랑의 방정식이 쓰여진다. 사랑하는 이들끼리 쉽게 맺어지면 좋으련만, 마음의 애정과 육욕은 서로 엇갈리고 결국 보비를 사랑하는 젊은 여인 오르르는 자살해 버린다. 그리고 보비는 다시 그 고장을 떠나버리고, 결국 벼락을 맞고 죽음을 맞이한다.
소설은 아주 자주 ‘기쁨’이라는 단어를 쓴다. 이 소설의 원제가 바로 “Que ma joie demeure”다. 즉 “내 기쁨 머물기를”이라고,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성가곡의 제목에서 따온 것이란다. 노동을 통한 기쁨, 연대를 통한 기쁨, 그리고 사랑을 통한 기쁨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것이 영원하기를 기원한다. 물론 그것은 영원하지 않기에(파국적인 결말이 그것을 증명한다), 더더욱 그것을 추구한다. 그리고 결국 다다르지 못하는 ‘영원한 기쁨’이지만, 그렇게 도달하기 위해 모든 것을 다하는 과정에서 ‘나의’ 기쁨을 찾을 수 있다. 장 지오노는 이 신비주의적이고, 자연주의적인 소설에서 그런 기쁨을 이야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