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고은, 《도서관 런웨이》
《밤의 여행자들》에 이어 《도서관 런웨이》를 읽으며 윤고은이라는 작가의 작품들이 대단히 기발하다는 걸 확인한다. 그런데 이 기발함은 기상천외하거나 대단한 상상력을 필요로 하는, 그러니까 있음직하지 않은 것을 이 세계에 끌어다 놓는 것이 아니다. 대신 없긴 없는데, 있음직한 그런 것을 소설에서 다룬다. 현실에 발을 붙이고 있으면서, 그 현실을 이야기하기 위한 방편으로 그냥 존재하는 어떤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할 수도 있는, 그런 것을 그려낸다.
《도서관 런웨이》에서 존재하지는 않지만(분명 그럴 거라 생각한다), 있음직한 상상으로 나온 것은 ‘안심결혼보험’이다. ‘보험’과 ‘결혼’이라는 현실에 분명 존재하고, 누구도 별 다른 상상력이 필요하지 않은 둘은 하나로 엮었다. 그랬더니 이것은 기발한 상상이 되고, 또 현실의 무엇인가를 이야기하는 아주 적절한 상황이 된다.
결혼이라는 것이 큰 문제가 없는 이상 누구나 거치고 유지해야 하는 제도 혹은 관계가 아니라 선택할 수도 있는 것이 되면서, 가족의 의미가 변해가는 상황이다. 이러한 시대에 이 관계를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제도인 보험과 연관하여 유지하거나, 혹은 아예 그 속에서 헤매지 않도록 하는 것인 바로 작가가 만들어낸(?) ‘안심결혼보험’이다. 그런데 작가는 여기서 그런 하나의 상품을 만들어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약관을 소설의 스토리를 이루는 축으로 만들고 있다. 보험 약관이 수십 만 원을 넘어서는 희귀본이 될 줄이야! 그리고 단지 보험의 의무와 보장을 무미건조하게 서술하는, 그래서 누구도 주의 깊게 읽지 않는 약관이 아니라 재미있게 읽게 되는, 그리고 현대, 대한민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보통 사람의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놀라운 책자로 재탄생한다. 그리고 그 약관은 그저 그런 삶의 모습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소설 속 인물의 성격과 마음과 몸의 움직임을 추적하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
단순히 코로나 시국을 배경으로 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상황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과 그 상황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현재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결혼과 보험이라는 보편적인 재료를 창의적으로 엮어 흥미롭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 바로 윤고은의 《도서관 런웨이》라는 소설이다. 그리고 그런 시대의 단면만이 아니라, 사랑, 혹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라는 누구도 쉽게 풀지 못하는 그런 문제를 나름대로 성실하게 풀어내고 있다.
한 가지 진짜 궁금한 건, 윤고은이 여행사와 무슨 관계가 있을까 하는 것이다. 《밤의 여행자들》에서 주인공이 재난전문여행사의 직원이었는데, 《도서관 런웨이》에서도 주인공이 여행사의 직원이었다가 코로나가 터지면서 그만두게 된 사연을 갖고 있다. 여행사의 직원이 소설 주인공의 직업으로 그렇게 흔하지는 않을 듯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