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이 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폴 데이비스가 물리학자라는 것부터 감안해야 한다. 그는 우주론/천문학을 연구하는 이론물리학자다. 이론물리학자답게(!) ‘거대한 질문’을 자신의 연구 주제로 잡는다(고 ‘저자 소개’에 쓰여 있다). 그 거대한 질문 중에는 ‘생명’도 포함되어 있다. 생명 현상을 생물학의 관점을 넘어서 물리학의 관점에서, 물리학과 생물학을 아우르며 설명하고자 한다. 이 책은 그런 그의 관점, 연구, 사색의 소산이다.
물리학자가 바라본, 혹은 설명하는 생명이라는 주제에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게 있다. 바로 슈뢰딩거의 《생명이란 무엇인가?》다. 1943년 2월 양자물리학의 선구자 에르빈 슈뢰딩거는 나치를 피해 망명한 아일랜드 더블린의 트리니티칼리지에서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으로 일련의 강의를 진행했고, 이를 책으로 냈다. 이 책은 많은 과학자들에게 영향과 영감을 주었고, 고전이 되었다. 슈뢰딩거는 생명 현상을 물리학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래야 한다고 여겼다. 물리학자의 자신감이었다. 20세기 후반 생물학뿐만 아니라 과학의 주류가 된 분자생물학은 바로 생물학에 물리학을 접목시킨 것이었다. 폴 데이비스도 여기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슈뢰딩거는 단지 물리학의 관점에서 생명을 ‘생각’만 했던 것을, 폴 데이비스는 생물학의 여러 분야를 깊게 공부하고, 많은 성과를 자기 것으로 만들어 다시 물리학의 관점, 더 좁게는 양자역학의 관점을 접목시키고 있다.
제목 얘기도 해야겠다. 제목의 ‘악마(demon)'은 다름 아닌 (저자가 뉴턴과 아인슈타인과 같은 급으로 인정하고 있는)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이 1867년에 얘기한 바로 그 악마, ’맥스웰의 악마‘에서 온 것이다. 바로 열역학의 문제에서 나오는 것으로, 엔트로피를 거스를 수 있는 장치를 조정하는 존재로서 상정한 것이 바로 맥스웰의 악마다. 폴 데이비스가 이 맥스웰의 악마를 이야기한 것은 생명이 바로 그런 엔트로피의 법칙을 거스르는 (유일한) 존재이기 때문이다(물론 그것은 생명체라는 존재 자체에만 해당하는 것이지, 생명체를 포함하는 열린 계에서는 엔트로피의 법칙을 거스를 순 없다).
이러한 것은 전제로 하면서 폴 데이비스는 생물학, 혹은 생명과학에서의 정말 큰 문제를 언급하고 있다. 생명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즉 생명을 논리로 설명할 수 있는지를 양자역학과 네트워크 이론 등을 가지고 설명하고 있다. 당연히 진화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이른바 ‘다윈주의 2.0’이라고 해서, 생명체의 진화가 환경에 대한 수동적 대응으로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인 변이 발생을 통해서 이뤄진다는 견해를 내세운다. 어쩌면 논란이 될 수도 이런 견해는 최근 떠오르는 분야인 후성유전학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이 견해는 나아가 암에 대한 혁신적인 견해로 이어진다. 그는 암이 일종의 퇴행이나 고대 생명현상으로의 초기화(이것이 암에 대한 과학자들의 보편적인 견해와 반대다)라고 본다. 즉, 다세포로의 조직화를 위해 진화한 기능이 헝클어짐으로써 암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암에 대한 새로운 견해가 암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데 획기적인 전환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개인적으로는 쉽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양자생물학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광합성과 새들의 비행 같은 것들을 양자물리의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는지를 점검하면서 양자생물학의 학문으로서의 가능성을 내다보고 있다(지금의 생물학도 쉽지 않은데, 양자생물학이라니... 이전 양자생물학을 처음 접했을 때의 느낌이 떠오른다. 그래도 광합성과 같은, 그래도 좀 알고 있는 내용이라 그나마 좀 낫다). 생명에서 커다란 질문에 의식이 빠질 수 없고, 생명의 기원 문제도 그렇다. 여기서도 그는 양자역학의 관점을 많이 접목시키고 있다.
이런 과정을 보면서 한 가지 놀라운 것 중 하나는 이 물리학자의 생물학에 대한 소양이다. 그는 그저 생물학을 그저 전체적인 맥락에서만 이해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가장 최신의 연구까지도 섭렵하고 있는 걸 알 수 있다. 다만 한 분자의 기능이라든가, 하는 세부적인 연구가 아니라 커다란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연구에 대해서 그렇다. 그래서 이런 그의 접근이 생물학자로서 매우 신선하고, 대단하고, 또 새롭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바로 오늘 실험을 해서 내일 논문을 써서 모레는 발표를 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실제로 무슨 도움이 될까 싶기도 하면서, 생명에 대해 이런 큰 질문을 던지는 입장이 되어보는 웅장한 꿈도 꾸게 된다. 여러 학문 분야를 섭렵하면 그만큼 질문의 내용도 깊어지고, 근본적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걸 새삼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