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영, 『거침없이 우아하게 젠더살롱』
난 내가 알지 못하던 것, 잘못 알고 있던 것을 알려주는 책이 고맙다. 또한 고민을 던져주는 책이 고맙다. 어느 쪽에서든 무언가를 생각하게 하는 책이 좋다. 박신영의 책들이 그렇다. 『거침없이 우아하게 젠더살롱』도 그렇다.
딸과 아들을 함께 둔 입장에서, 그리고 딸과 아들의 앞날이 영예롭기를 바라고 기대하는 입장에서 젠더를 둘러싼 논쟁, 논란은 나를 가끔씩 이중적으로 만든다. 군에 입대하면서, 휴가를 나올 때마다, 제대한 이후에도 아들이 간혹 터뜨리는 불만을 다독이다가도 가끔 어쩔 수 없이 녀석의 편에 설 때가 있다. 딸이 여성으로서 부당한 대우를 받는 상황에 대해서 함께 분노하다가도 어쩔 수 없으니 잘 헤쳐나가라는 조언을 할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혼란스럽다. 물론 아들의 불만은 주로 여성을 향한다기보다는 군대를 가지 않은 다른 남성을 향할 때가 더 극렬하고, 딸의 불만은 아직까지는 녀석의 능력으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그래도 나의 입장은 늘 왔다 갔다 한다.
무엇이 옳은지 대체로 알면서도 늘 그 옳음을 강력하게 주장하지 못한다. 조심성 때문일 수도 있지만, 한계라고 해야 맞다. 내가 그런 일로 문제를 일으킨 적도 없고, (적어도 내 기억으로는) 특별히 고루하단 지적도 받은 적이 없지만, 그래도 나의 내재적인 한계는 분명히 존재할 터이다. 만약 내가 젠더 갈등과 관련한 문제로 괜찮은 평가를 받는다면 ‘그나마’라는 전제 조건을 달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나의 ‘망탈리테(mentalites)’가 내가 속해 있는 집단의 것과 그닥 다르지는 않을 테니.
박신영 작가는 여기의 글을 누가 읽을 것을 염두에 두고 썼을까? 누가 읽기를 원하는지, 나아가 누가 이런 책을 읽을지도 생각해 봤고, 누가 읽어야 하는지도 가늠해 봤다. 역시 쉽게 가늠은 되지 않는다. 박신영 작가의 이 글을 절대적으로 동의하는 이들이 읽는다면, 이 책은 그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까? 반대로 절대로, 혹은 거의 동의하지 못하는 사람이 읽는다면(그럴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을 것 같지만)? 책을 읽으며 불편함을 감내할 정도가 아니라면 제목만 보고도 밀쳐낼지 모른다.
그래서 난, 이 책이 나 같은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는 생각을 했다. 여기의 내용에 피상적으로 동의하지만(물론 전부 동의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게 전적으로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면 아마도 ‘모든 남성이 그런 것은 아니다’는 식의 반응 때문일 것이다. 혹은 ‘난 아닌데...’와 같은 본능적인 방어기제 때문일 지도 모른다), 체화되어 있지 않은 사람. 어떤 부분은 고개를 끄덕이지만, 다른 부분은 갸웃거리는 사람. 혹은 책을 읽으며 간혹(내지는 자주) 부끄러움을 느끼는 사람. 피상적으로 동의를 한다면 체화되는 것도 어느 정도는 가능한 일이 터이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부분이 있다손 치더라도 고개를 끄덕이는 부분이 점점 늘어날 터이고, 부끄러움을 느낀다면 조금의 가능성이라도 증가할 터이다. 그렇게 기대한다. 적어도 나에 대해서는.
사실 이 책을 다 읽고서도 여전히 딸과 아들이, 분명히 제기할 어떤 불만과 분노에 대해 명확하고 일관된 입장을 취할 자신은 없다. 물론 딸에게 참고 살라고는 하지 않을 것이다. 아들에게는 그래도 네가 살아온 세상이, 살아갈 세상이 누나가 살아온 세상, 살아갈 세상보다는 낫다고 할 것이다. 내가 살아온 세상보다는 차별과 혐오가 줄어든 세상에서 녀석들이 살아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