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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이 이런 모습인 이유, 물리학의 답

김범준, 『세상은 왜 다른 모습이 아니라 이런 모습일까?』

by ENA

제목을 보고 궁금했다. 사실 이와 같은 질문은 매우 흔한(?) 질문이다. 어느 분야에서도 현재의 세상이 왜 이 모양인지에 대해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과학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를테면 생물학도 왜 생명체가 현재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다양한 각도에서 질문을 던지고 답을 하려고 노력한다. 김범준 교수는 물리학자인데, 그는 이 질문에 어떤 식으로 대답할까?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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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처음엔 조금 의외였다. 봤더니 김범준 교수는 단위와 측정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단위와 측정이 이 세상이 다른 모습이 아니라 지금과 같은 모습이라는 것에 관한 결정적인 답변이 될까 싶었다. 그러나 조금 더 읽다 보니 수긍이 간다. 빛이 속도의 한계가 아니라면 생겨날 일, 중력이 지금보다 100배 크다면 생겨날 일, 양자역학의 플랑크 상수가 지금보다 커졌을 때 생기는 일, 전자의 전하량이 엄청나게 커지거나 작아진다면 생기는 일 등등에 관한 상상이나, 혹은 대기의 압력이 높아지면, 혹은 낮아지면, 그리고 전압이 높거나 낮거나 할 때 어떤 현상이 벌어지는지에 관한 실제적인 일들에 관한 설명은 모두 이 세상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존재하는 이유를 설명하기에 충분한 답변들인 것이다.


그런 이 세상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단위다. 길이라든가, 질량, 온도, 시간과 같은 단위는 서로의 의사소통을 위해서 반드시 통일되어야 하는 것들이다. 이는 과학적으로도 그렇고, 사회와 생활에서도 그렇다. 그런데 이 단위들을 정의하는 방식은 변해왔다. 이를테면 길이의 미터가 지구에서 적도에서 북극까지의 거리를 이용해서 약속된 것이었다면(프랑스혁명 시기), 이후에는 표준 원기를 활용한 정의로, 그리고 지금은 빛이 1/299792458초 동안 이동한 거리로 정한다. 이렇게 정한 까닭은 이렇게 정의했을 때에야 다른 조건에 대한 고려 없이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김범준 교수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외계인을 언급한다. 즉 문명화된 외계인이라면 알아들을 수 있는 정의라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이런 길이뿐만 아니라 물리학에서는 7개의 표준 단위를 정해 놓고 있다. 길이(미터, m), 시간(초, s), 질량(킬로그램, kg), 전류의 세기(암페어, A), 절대 온도(캘빈, K), 물질의 양(몰, mol). 이 단위들을 정의해 놓은 것을 보면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그런 현상을 통한 정의에서 어떤 기준 물질 등을 통한 정의로, 그리고 지금은 완전히 물리학의 언어로 정의로 변해온 것을 알 수 있다. 즉, “물리학은 우주 어디서나 통하는 우주의 보편적인 언어”라는 인식 하에 우리의 물리학과 외계인의 물리학이 다르지 않을 것이며, 이를 바탕으로 단위를 정한다면 최소한 과학의 언어는 서로 소통이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다.


이런 얘기들은 무척 흥미롭다. 그런데 내용은 결코 쉽지 않다. 공식을 거의 쓰지 않는 요즘의 교양과학서의 방향을 매우 많이 어기고 있다. 그래도 자제하기는 했을 테지만, 공식 쓰는 것을 부담스러워하지 않고 있다. 아마도 이쪽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읽는 책이라면 이 정도는 알아야 한다고 여긴 것일 수도 있고, 공식 자체에 신경을 쓰지 않고 읽더라도 큰 문제가 없다고 여긴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자신감일 수도 있다. 나의 경우엔 반쯤은 피상적으로라도 이해했고, 나머지 반쯤은 외계어쯤으로 생각하며 넘어갔다. 내용만으로도 끔찍하단 생각은 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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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며 우리가 서 있는 이 자리가 매우 좁은 자리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우주의 조건이, 지구의 조건이 조금이라도 달랐다면 이 세상은 이렇게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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