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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우연성과 책임감, 그리고 아이러니

필립 로스, 『네메시스』

by ENA

소설은 1944년 아직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지 않은 초여름, 미국 동부 뉴어크에 폴리오가 찾아오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해 여름 첫 폴리오는 6월 초, 메모리얼 데이 직후, 우리가 살던 곳에서 시내를 가로지르면 나오는 가난한 이탈리아인 동네에서 발병했다.”


가난한 이탈리아인 거주지에서 시작된 폴리오의 공습은 유대인 집단 거주지인 위퀘이크까지 번진다. 흔히 소아마비라고 하는 이 질병은, 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과거에는 정말 공포스러운 질병이었다(지금은 천연두 다음으로 박멸을 목표로 하는 질병이다). 사지를 마비시키고, 호흡기까지 침투하면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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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은 유태인 청년 버키 캔터다. 어머니는 그를 낳다 죽었고, 아버지는 횡령으로 감옥에 갔다 온 후 나타나질 않는다. 캔터는 외조부모 슬하에서 건실하게 자랐다. 운동에 소설이 있었고, 할아버지의 조련 하에 육체 단련도 꾸준히 했다. 대학을 나오고 학교의 체육 선생님(놀이터 교사)으로 일하고 있고, 역시 학교 선생님인 마샤와 사귀고 있다. 전쟁이 터지자 자원했지만, 시력이 워낙 좋지 않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소설은 거의 두 장소에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앞부분은 폴리오가 몰려오는 위케이크다. 아이들이 한 명씩 쓰러지고 죽기까지 한다. 캔터는 아이들이 동요하지 않도록 애를 쓰지만, 폴리오를 막을 수는 없다. 그러다 인디언 힐의 여름 캠프에 교사로 가 있는 여자 친구 마샤의 간곡한 호소에 위케이크의 놀이터를 떠나 인디언 힐로 간다.


이 과정에서 캔터는 지독한 자기혐오에 빠진다. 전쟁에서도 빠졌고, 아이들을 버리고 폴리오에서도 비겁하게 도망쳤다고 여긴다. 그리고 폴리오 청정 지역 같던 인디언 힐에서도 환자가 나타난다. 바로 캔터의 곁에 있던 카운슬러. 캔터도 검사를 받고 폴리오 양성 진단을 받는다. 그리고 그에게도 증상이 찾아온다.


마지막 무대는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뉴어크의 브로드 스트리트다. 1944년 당시 놀이터의 한 소년과 캔터가 만난다. 이 소년 역시 폴리오에 걸렸고, 결국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사실 소설의 화자는 바로 이 소년이다. 그가 자신이 보았던 것과 캔터에게 들은 이야기를 전하는 형식인 셈이다. 캔터는 자신이 인디언 힐에 폴리오를 퍼뜨린 장본인(보균자)라고 여기며 자책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여전히 자신과 결혼하기를 원하는 마샤를 뿌리치고, 평생 혼자 살아가고 있었다. 이는 결혼하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는 소설의 화자와 대비된다.


소설 속에서 캔터는 유태인이지만 신에 대해 굉장한 회의를 나타낸다. 신이 모든 것을 만들어냈다면 끔찍한 폴리오는 왜 만들어냈으며, 그렇게 기도하는 어린 친구들의 가족의 가족의 바람을 뿌리쳤는가? 신의 존재에 대한 회의가 아니라 신의 본성에 대한 회의였다.


“이제 그는 아이가 아니었기 때문에 일이 달리 될 수 없었던 것은 하느님 때문임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하느님이 아니었다면, 하느님의 본성이 달랐다면, 상황도 달랐을 것이다.”


“그의 분노의 대상은 이탈리아인이나 집파리나 우편물이나 우유나 돈이나 악취가 나는 시코커스나 무자비한 더위나 호러스가 아니라, 도무지 앞뒤가 맞지는 않지만 사람들이 두려움과 혼란 때문에 유행병을 설명하기 위해 내어놓은 그 모든 원인이 아니라, 심지어 폴리오 바이러스가 아니라, 그 원천, 그 창조자-바이러스는 만든 신이었다.”


버키 캔터가 폴리오에 걸리고, 그 주변 사람들 역시 폴리오 걸린 것은 그의 책임이 아니다. 그러나 스스로를 자책하고, 두려움에 떨며 스스로를 잔인하게 다룬 것은 이해할 수 있다. 스스로 그 책임을 떠맡고 있으며, 병을 만들고 사람들을 죽음으로 이르게 한 신을 원망한다. 필립 로스는 질문을 던진다. 과연 이런 우연한 불행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 것인가? 명시적으로 답을 제시하고 있지는 않다. 다만 버키 캔터의 인생을 말하는 ‘나’의 삶을 보면 힌트는 되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고 그것을 정답으로 삼지 않으며, 누구에게나 고민이 되는 지점, 그 아이러니를 남기고 있다.


제목 ‘네메시스(Nemesis)’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여신이다. 율법의 여신이라고도 하고, 복수의 여신이라고도 한다. 법은 복수를 공식화한 것이니 서로 통한다. 네메시스라는 존재가 인간의 자만심에 대한 신의 보복을 의미한다고 하니, 소설의 폴리오가 바로 그런 의미로 필립 로스는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이 소설은 필립 로스의 마지막 소설이다. 이 소설을 쓰고는(2010년) 더 이상 소설을 쓰지 않겠다고 했고, 2018년 죽으면서 그의 선언은 사실이 되었다. 마지막 소설이라고 해서 그의 모든 것을 다 갈아 넣은 느낌은 들지 않는다. 늘 하던 대로 소설을 썼고, 이쯤이면 자신이 할 수 있는 얘기는 다 한 것 아닌가 하는 마음이지 않았나 싶다.


“저는 다 끝냈습니다. 이 작품이 제 마지막 작품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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