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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마약 펜타닐을 추적하다

벤 웨스트호프, 『펜타닐』

by ENA

펜타닐(Fentanyl)은 1959년 폴 얀센과 그의 팀이 당시 최고의 진통제였던 모르핀의 대안을 찾는 과정에서 합성한 물질이다. 지금은 존슨앤존슨에 합병된 제약회사 얀센에게 커다란 수익을 안겨준 화학물질이기도 하다. 모르핀보다 우수한 진통 효과를 가진 펜타닐은 오랜 시간이 걸리는 수술, 이를테면 개심 수술(open-hear surgery)를 가능하게 해주었다. 당시에는 획기적인 발견이었으며 곧 전 세계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마취제가 되었다. 하지만 개발 초기부터 잠재적인 중독 위험성이 드러났고, 결국엔 1971년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가 오락적 사용을 금지하기 시작했다(이 책에서는 ‘오락적’ 사용이란 표현을 자주 사용하는데 의학적 사용이 아닌 즐길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펜타닐은 이른바 오피오이드에 속한다. 모르핀처럼 양귀비 등과 같은 데서 자연적으로 추출한 약물을 아편류라고 부르는 데 반해, 오피오이드는 실험실에서 합성을 만들어진 유사한 화학물질을 말한다. 이른바 ‘신종 향정신성 물질(NPS, Novel Psychoactive Substances)’에 속하는 펜타닐은 위험하다. 아편류가 중독으로 인해 어떤 행동을 하거나 함으로써 위험해지는 데 반해, 펜타닐과 같은 오피오이드는 그 자체로 위험해서 중독을 넘어 사망에 이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저자가 지적하고 있듯이 한 해에만도 펜타닐을 비롯한 오피오이드로 인한 사망자 수가 미국에서만 매년 7만 명에 이른다.


탐사 전문 기자인 벤 웨스트호프는 수 년 간의 취재와 연구를 통해 이 책을 썼다. 중독자는 물론 마약 딜러, 희생자 가족, 마약 관련 연구자, 의사, 상담사, 활동가, 경찰, 단속원, 정치인 등을 망라해서 관련자 160명을 인터뷰했고, 관련 자료들을 섭렵했다. 그리고 중국의 마약 관련 시설을 직접 찾아가기도 했다. 물론 신분을 속이고 잠입한 것이었다. 충격적인 것은 그런 시설이 비밀리에 운영되는 게 아니라 공개적인 사업이라는 점이다. 미국에서는 불법이지만, 그 물질 자체가 중국에서는 불법이 아니기 때문에, 그리고 수출을 통해 많은 돈을 벌어들이기에 펜타닐 전구체를 합성하는 것을 금하지 않거나, 금하는 것을 늦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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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펜타닐 등의 NPS가 사람들의 삶과 공동체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를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으며, 그것들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유통되는지를 끈질기게 추적했다. 그리고 이것을 바라보는 관점을 달리 할 것을 조심스럽게 제안하고 있다. 즉, 비폭력 마약중독자를 범죄자로 취급해서 가두고, 처벌하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헤로인과 같은 약물을 금지하고, 소지하는 것만으로도 처벌한 결과가 위험한 약물인 펜타닐 사용 급증으로 이어졌다는 것이 저자와 일부 관계자의 진단이다. 처벌만으로는 절대 근절시키수 없고, 그래서 마약 사용을 어느 정도는 불가피한 것으로 인정하고, 이를 치료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마약 정책의 목표를 마약 금지가 아니라 마약 피해 경감에 두어야 한다고 한다. 마약의 성분과 양을 측정할 수 있는 키트를 제공함으로써 안전한 마약을 사용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중독자를 치료할 수 있는 시설과 자금을 확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이는 마약 사용이 만연한 미국 같은 사회에서의 얘기이기 때문에 우리의 상황과는 맞지 않다. 그러나 지금 추세로 보면 미리 대비할 필요는 있지 않을까 싶다.


책을 읽으며 좀 더 생각해보게 된 부분을 애기해보면, 첫 번째는 연구자들에 관한 것이다. 펜타닐을 처음 합성한 폴 얀센도 그랬고, 파티용 마약이 아니라 정신요법의 도구로 엑스터시와 같은 MDMA를 연구하고 찬양했던 사샤 슐긴, 사샤 슐긴의 협력자이면서 퍼듀대학교에서 도파민과 세로토닌 수용체를 중심으로 사이키델릭의 뇌에 작용하는 방식을 주로 연구했던 데이비드 니콜스와 같은 이들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연구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쓰이길 원했던 연구자들이다. 하지만 이들의 연구는 학계에 머물지 않고 금새 시장으로 도약해버렸다. 그들이 만들어낸 물질은 시장으로 나왔고, 그들의 연구가 실린 논문을 토대로 다른 화학자들이 물질을 합성해냈다. 그리고 그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중독은 물론 목숨까지 잃었다.

이들을, 그리고 이들의 연구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그들의 연구 의도를 먼저 생각해야 할까? 결국엔 그들의 연구가 빚어낸 결과를 판단해야 할까?

간단한 문제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연구자에겐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또 한 가지는 중국에 관한 것이다. 중국은 마약 사용과 유포에 관해서 굉장히 엄한 처벌로 유명하다. 그래서 실제로 펜타닐과 같은 마약은 널리 유통되고 있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그 전구체를 미국에 제공하는 주요 국가다. 중국 당국은 그런 사실을 알고는 있겠지만, 이에 대한 단속에는 미온적이다. 자신들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그리고 서방에서 만들어서 그들이 사용하여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을 왜 자신들의 책임으로 돌리느냐는 항변을 한다. 책임 없는 태도일 수도 있지만, 또 어쩌면 맞는 말, 아니 받아들이기 난감한 말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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