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것들, 40대 남성의 위기와 불안

앤드루 포터, 『사라진 것들』

by ENA

앤드루 포터.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이라는 마치 물리학 책 제목 같은 소설집을 2, 3년 전쯤 읽었다. “어쩌면 물리학의 입자를 발견하기 위한 도구인 안개상자를 보는 듯한 느낌”이라고 적었었다(https://blog.naver.com/kwansooko/222407256338). 상처 입은 사람들. 개인적인 것이지만 사회적인 것으로 확장되는 상처들을 앤드루 포터는 신중하게 고른 단어로, 거칠지 않고, 간결한 문장으로 매우 신중하게 쓴 것 같다고 썼다. 그리고 그런 섬세한 문장 때문에 “잊혀질 수 없는 삶의 한 지점을 바라본 눈길”을 아름답게 여겨진다고 했다.


다시 앤드루 포터. 이번에는 『사라진 것들』이라는 소설집이다. 한두 장짜리 아주 짧은 소설도 있고, 길더라도 앉은 자리에서 충분히 읽어낼 수 있는 소설들이 모두 열 다섯 편이다. 이번에는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을 읽을 때처럼 단어와 문장이 깊게 박히지 않는다(“많은 사람이 뇌심부자극이라는 용어가 무슨 뜻인지 알 필요 없이 살아간다.”는 <첼로>의 문장이 오래토록 박혀서 여러 차례 뒤돌아가긴 했지만). 아마도 그의 문장에 대해서는 이미 알고 있다는 듯이.


IMG_9788954697354.jpg



여기서는 시점이 보인다. 일인칭 시점. 고집스레 고수하고 있다. 그리고 그 ‘일인칭’은 모두 다른 사내이지만, 또 모두 같은 사내처럼 여겨진다. 40대의 남자. 그들은 대체로 어느 대학의 교수이거나, 예술가, 혹은 예술 분야 언저리에 있는 인물들이다. 예술가의 삶을 안정적이라고 할 수 없듯이, 대학 교수라고 하지만 지위가 확고한 인물도 없다. 모두 불안정한 삶을 살아가는 40대의 남자들이다. 불안하다. 가까스로 여기까지 왔으나 앞은 더 위태로워 보인다. 그나마 무언가를 꿈꿔볼 수 있던 젊음 마저도 이제는 사그러가는...


배우자 내지는 연인이 있지만 그 관계 역시 위태롭다. 열정의 시기가 지났다. 그 열정을 채울 무엇인가를 아직 찾지 못했다. 아이가 없거나, 아이가 있더라도 그 아이가 그들의 관계에 완충제가 되어주지 못한다. 책임이 늘어가지만, 과연 그 책임을 감당할 만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확신하지 못한다. 불안한 삶의 원인이 있어보이지만, 그게 무엇인지 특정하지 못하고, 헤맨다. 모두 나의 잘못인 것 같기도 하지만, 또 어떤 때는 억울하다. 40대 남자들이다.


배경은 거의 대부분 오스틴, 혹은 샌안토니오다. 텍사스주의 도시다. 그 장소가 주는 의미를, 나는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 반복이 주는 효과는 분명하다. 대도시도 아니고, 그렇다고 시골도 아닌 그곳은 기회가 너무 많지도, 또 없지도 않다. 그래서 살아갈 수 있지만, 그렇다고 잘 살아가기도 힘들다. 벗어나기도 힘들고, 그렇다고 그곳에서만 살아갈 수도 없다. 어쩌면 그들은 갇혀 있는지도 모른다. 그곳을 탈출한 이들은, 결국 다른 곳에서 그곳으로 왔던 이들뿐이다.


나는 분명 그 나이를 지나왔지만, 그리고 그들처럼 존재론적 불안에 떨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그들을 이해한다. 문학이란 그런 것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역사, 전쟁, 화학. 곽재식이 아니면 못쓰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