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림트의 <키스>와 발생학

유임주, 『클림트를 해부하다』

by ENA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해부학 교수인 유임주 교수는 2021년 <JAMA>지에 논문을 발표했다. <JAMA>는 미국의학회에서 발간하는 저널로 <NEJM>, <Lancet>과 함께 세계 3대 의학저널로 꼽힌다. 이 3개의 의학저널은 과학 분야의 CNS, 즉 <Cell>, <Nature>, <Science>와 비견된다(impact factor는 더 높은데, 그건 비교가 힘든 게 분야가 다르니 그렇다). 아무튼 대단한 일이다.


그런데 유임주 교수가 발표한 논문의 내용이 놀랍다. “Gustav Klimt's The Kiss-Art and the Biology of Early Human Development". 해석해보자면 ”구스타프 클림트의 작품 <키스>와 사람 발생 초기의 생물학“이다. 클림트의 <키스>란 작품이야 너무 유명해 더 언급할 필요도 없는 그림이다. 책에도 언급되듯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을 설문 조사했을 때 순위 6위에 올랐다(1위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였다). 그런데 그 그림이 발생학과 무슨 의미가 있다는 거지? 유임주 교수는 도대체 무슨 일을 한 거지? 책을 펴보기 전부터 궁금증이 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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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부분의 클림트에 관한 개인적인 이야기나 예술 세계, 발생학의 기초, 그리고 뒷부분의 다른 화가들과 그들의 그림 얘기는 클림트의 <키스>에 관한 내용에 대해 빌드-업이거나 후일담 같은 거다. 그러니 이 책의 중심은 뭐니뭐니해도 클림트의 <키스>와 관련한 것이다. 물론 사전 지식은 중요하다. 클림트가 어떤 예술 세계를 추구했는지, 어떤 이들과 인간적인 관계, 사회적인 관계를 맺었는지가 <키스>를 비롯한 작품에 저자가 이야기하는 상징과 내용을 넣게 되었는지를 해명하고, 더불어 당대의 발생학의 발전 수준 역시 이 상황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저자가 발견한 것은 <키스>에 인간 발생, 그것도 3일차까지의 상황이 그려져 있다는 것이다. 우선 키스를 하는 남자와 여자의 황금빛 옷에 정자와 난자를 강력히 암시하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심지어 그 후에 발견되는(하지만 무엇인지는 모르고 있었지만 존재만큼은 알고 있었던) 정자의 미토콘드리아를 연상케 하는 것도 있다. 난자의 경우에는 발견이 늦어진 만큼 알려진 것도 많지 않았는데, <키스>에는 핵까지 명확히 나타나 있다. 또한 난자와 정자의 수정 순간이 그려져 있고, 수정 후 발달 과정도 있다. 그래서 오디배(과거에는 상실배라고 했던 것)까지도 표시되어 있다. 이러한 발달 과정의 모습은 이 <키스>만이 아니라 다른 작품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클림트는 어떻게, 왜 이런 것을 자신의 그림에 넣었을까? 우선 클림트가 활약한 20세기 초반, 특히 빈의 상황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20세기 초반은 과학이 속도를 내며 발달하던 시기였고, 빈은 그 중심에 서 있던 도시였다. 다른 책에서도 20세기 초의 빈은 현대의 거의 모든 사조가 출현한 도시라는 얘기를 들은 바 있다. 그런 환경에서 클림트는 과학자와 교류를 하고 있었고, 그것을 자신의 그림에 표현해내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이전 그림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클림트는 ‘생로병사의 비밀’을 해석하고, 그것을 그림으로 풀어내는 데 무척 관심이 많았다. 관심이 많았다기보다 그것을 자신의 예술하는 목적으로 삼았다할 정도다. 그러니 당시 발생학의 발달은 그것을 설명하는 중요한 내용이었다고 할 수 있다. 감수성이 충분하고, 시대적 변화에 민감했던 클림트가 이를 그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동안 이런 것을 몰랐을까? 저자가 이것을 본격적으로 연구해보고자 마음을 먹은 것은 신경학자이면서 노벨상 수상자인 에릭 캔델의 강연을 듣고나서였다고 한다. 캔델은 미국에서 연구활동을 했지만, 오스트리아 빈 출신으로 특히 1900년대 초반 빈의 예술가들, 클림트, 에곤 실레, 오스카 코코슈카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에 관해 쓴 그의 책 『통찰의 시대』는 나도 읽은 바 있다. 캔델은 클림트의 그림에 정자와 난자의 아이콘이 장식되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이를 본격적으로 연구했고, 그것을 논문으로 냈으며, 그리고 이 책을 내게 된 것이다. 말하자면 미술과 과학이 아주 행복하게 만나고 있는 책이 바로 이 책인 셈이다.


나는 앞부분을 읽으면서는 어쩌면 이런 해석이 주관적, 내지는 과장일 수 있을 거라 여겼다. 하지만 유임주 교수의 설명은 너무나 정합적이다. 그리고 거의 부인하기 힘든 내용들이다. 클림트의 삶과 예술이 추구했던 것과도 잘 어울린다. 정말 클림트와 클림트의 작품을 잘 해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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