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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만든 작지만 위대한 것들

로마 아그라왈, 『볼트와 너트, 세상을 만든 작지만 위대한 것들의 과학』

by ENA

제목은 ‘볼트와 너트’. 딱 두 개만 언급하고 있지만(실질적으로는 볼트와 너트는 쌍으로 다니기 때문에 언급한 것은 하나뿐이라 할 수 있다), 구조공학자 로마 아그라왈이 책에서 소재로 잡은 것은 모두 일곱 개다. 르네상스 시대의 과학자들이 복잡한 기계의 기초가 되는 ‘단순 기계’로 지렛대, 바퀴와 축, 도르래, 빗면, 쐐기, 나사를 정의했지만, 그녀는 이게 너무 구식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고른 것이 못, 바퀴, 스프링, 자석, 렌즈, 끈, 펌프, 이 일곱 개다(그러고보니, ‘볼트와 너트’는 없다. 아주 기본적인 공학적 물건이라는 뜻으로 ‘볼트와 너트’를 제목에 쓴 것이다). 특별히 이것들을 고른 기준에 대한 언급은 없다. 첫 느낌으로 다소 다른 것과 이질적으로 여겨지는 것도 있다(이를테면, 펌프나 렌즈 같은 거. 나도 그렇게 느낀 기준은 없다. 그냥 느낌이 그럴 뿐). 하지만 이것들이 단순한 형태에서 시작해서 “다양한 반복과 형태를 거쳐” 현대 문명을 떠받드는 기초적인 물건이 되었고, 앞으로도 “계속 변화하는 경이로운 발명품”이라는 것에도 한 치의 이견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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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로마 아그라왈이 언급하는 이 일곱 개의 ‘세상을 만든 작지만 위대한 것들“의 역사와 원리가 정말 중요하기 때문에 그것을 알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하자면 당연한 이유 때문에 이 책이 훌륭하다는 것 외에도 그녀가 그것들에 대한 설명하는 방식은 독특한 데가 있고, 그래서 이 책을 매력적으로 만든다(’훌륭한‘과 ’매력적”은 분명히 다른 말이다).


우선 일곱 개의 사물을 설명하는 방식이 제각기 독립적이다. 그러니까 처음 어떻게 이것이 나왔는지에 대해 역사와 유물을 설명하고, 원리를 설명하고, 그것들이 어떻게 적용되었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발달할 것인지... 이렇게 모범적으로 쓰고 있지 않다. 물론 그런 방식을 취한 것도 있다. 하지만 어떤 장은 딸에게 보내는 편지로 시작하고, 어떤 장은 자신의 경험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여기의 일곱 사물을 생각하면 흔히 떠올릴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을 제시한다. 이를테면, 렌즈는 시험관 아기를, 못은 전투기, 스프링은 자동식기세척기, 끈은 방탄조끼, 펌프는 인공 심장, 유축기를 떠올린다. 모르겠다. 누군가는 렌즈에서 시험관 아기를 떠올릴 지도 모르겠지만(로마 아그라왈처럼), 나는 좀처럼 쉽지 않은 상상력이다.


그런데 이 책이 더 매력적인 것은 그런 쉽지 않은 상상력이 바로 로마 아그라왈 자신의 경험에서 대부분 나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자신의 경험을 책 속에 아주 자연스럽게, 그리로 설득력 있게 녹여내고 있다. 렌즈에서 시험관 아기를 상상한 것은 자신이 아이를 갖기 위해 시험관 시술을 했던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그런 시술이 가능해 진 것은 아주 많은 분야의 발달이 필요했지만, 그중 하나가 바로 렌즈의 발달이다. 유축기 역시 자신이 딸을 낳고 모유 수유를 하는 데 정말 고통스러웠던 경험을 해결해 준 것이 바로 유축기였다는 데서 나온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펌프의 원리를 아주 잘 구현하고 있기 때문에 적절한 비유가 되고 있다. 그뿐 아니다. 자석 역시 그녀의 가족사를 통해서 이야기를 이끌어내고 있고, 끈에서는 그녀가 구조공학자로서의 경험 속에서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내고 있다. 간혹 이 물건들을 활용한 제품의 원리가 다소는 쉽지 않은 감이 있지만, 그것을 충분히 상쇄할 만큼의 이야기가 이 책에는 있다.


그리고 그녀가 이런 일곱 개의 물건을 통해 이끌어내는 결론 역시 엔지니어답다. 그녀는 현대의 환경 문제 등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재사용(재활용)이나 수리를 제시하고 있으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제품의 디자인 단계에서부터 분해하는 방법을 고려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래야 제품을 수리할 수 있으며, 업그레이드도 가능하며, 재활용도 수월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공학자로서 원리를 이해하는 데도 훨씬 도움이 된다. 그래서 그녀는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을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스스로에게 이런 질물을 해보자. 어떻게 하면 더 나아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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