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은 죄가 없지만...

샘 킨, 『과학 잔혹사』

by ENA

이미 어딘가 남겨 놓았을 것 같은데, 나는 샘 킨의 열혈 독자다. 그의 책이 한동안 번역되어 나오지 않는다고 출판사에 투덜거렸을 정도로. 이후로 『카이사르의 마지막 숨』, 『원자 스파이』가 나왔고, 또 바로 『과학 잔혹사』가 나왔다. 샘 킨은 절대 실망시키지 않는다. 다시 확인했다.

“많은 사람은 훌륭한 과학자를 만드는 것이 지성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생각은 틀렸다. 훌륭한 과학자를 만드는 것인 인성이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이 말을 샘 킨은 책의 맨 앞과 맨 뒤에 반복해서 인용하고 있다. 그렇다. 이 책은 과학자의 ’인성‘에 관한 책이다.


KakaoTalk_20240515_195836200.jpg


물론 정말 ’과학자‘의 ’인성‘에 관한 얘기인가, 싶은 부분이 없지 않다. 표본을 수집하기 위해 해적질을 하는 데 거리낌이 없었던 17세기 말의 윌리엄 댐피어 같은 이를 과학자로 부를 수 있을지 의문이며, 빚쟁이를 살인한 하버드대의 화학자 존 화이트 웹스터의 경우엔 그의 잘못은 과학자라는 직업과 연관이 없다. 그리고 터스키기 매독 연구에 간호사로 적극 참여한 유니스 리버스의 인성을 문제 삼을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현대적 의미의 과학자로 부를 수 없는 이가 있지만 그들이 스스로 과학의 일을 하고 있다고 여겼기에, 과학자로서 잘못을 저지른 게 아니더라도 과학자라는 세간의 평가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지녔기에, 인성에 문제가 없더라도 분명 잘못을 저지른 것은 맞기에 우리는 이 책에서 ’과학자‘라는 직업을 가진 이들이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하면 최대한 막을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여기의 과학자들의 벌인 범죄(또는 범죄에 가까운 짓)은 몇 가지로 나눌 수가 있다. 시대적 조건에서 어쩔 수 없다고도 보이지만 피할 수도 있었던 일(해적질이나 노예 무역, 시신 발굴과 같은), 개인적인 인성의 문제, 즉 의도적인 범죄(존 화이트 웹스터의 살인이나 약품 수사국 화학자 두컨의 증거 조작 같은), 과도한 경쟁으로 상대방을 비방하거나 몰락시키려 한 일(직류, 교류 전기를 둘러싼 에디슨의 행동이나 공룡 화석을 두고 벌어진 코프와 마시의 경쟁), 스스로는 인류를 위한다고 생각했으나 실제로는 자기 과신으로 잘못되어가는 것을 외면한 일(얼음송곳으로 전두엽 절제술을 실시한 월터 프리먼이나, 젠더를 강조하며 과도하게 성전환 수술을 강요한 존 머니 같은) 등.


이렇게 나눠 보면 과학자로서 저지를 수 있는 잘못의 종류가 다양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물론 이러한 잘못 중에는 과학자가 아니더라도 저지르는 것도 있지만, 과학자만이 저지를 수 있는 것도 있다. 앞서도 얘기했듯이 과학자가 아니라도 저지를 수 있는 잘못도 과학자라는 직업에 드리워진 세간의 믿음 등에 비춰보면 역시 과학자로서의 잘못이 아니라고는 할 수 없다. 더더욱 조심해야 하는 것은, 과학자라는 직업을 가진 이가 저지를 수 있는 일들이다. 점점 과학에 대한 의존이 커지면서, 또한 과학, 과학자에 대한 믿음이 커지면서 과학자가 그것을 이용해서 저지르는 잘못은 돌이킬 수 없는 경우가 적지 않다. 키진스키를 유나바머로 만드는데 일조한 심리적 고문이나 터스키기 매독 실험이나, 나치의 인체 실험과 같은 것들이 그렇다. 과학자로서 자신의 활동이 윤리적으로 어느 위치에 있는지를 늘 인식하고 확인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본다.


샘 킨은 윤리를 이야기한다. 신고서에 서명을 먼저 하느냐, 뒤에 하느냐와 같은 넛지 식의 실험을 소개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그런 식으로 과학의 윤리도 해결하자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과학 활동이 윤리적으로 타당한 것인지, 문제는 업는지를 미리 확인하는 자세, 습관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사후 확인은 자신에 대한 합리화로 이어지는 게 인간의 본성이다. 과학자라고 다를 수 없다. 그리고 과학사를 읽기를 권한다. 과학사에는 좋은 의도를 가지고 시작했지만 윤리적으로 그릇된 사례를 많이 찾을 수 있다.

흥미진진한 스릴러 소설 같은 이야기가 실제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과학자의 손에 벌어졌다는 게 놀라운 일이지만, 나는 여전히 과학에 믿음을 가지고 있다. 과학자들이 더 윤리적이라서가 아니다. 오히려 과학자들도 다른 사람들과 비슷해서이다. 그러나 과학은 그런 과학자들을 거를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는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무너뜨리는 것은 과학이 아니라 과학 밖의 상황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물론 샘 킨이 이야기한 대로 과학자들 스스로 윤리에 대해 인식하고 있고, 지키려는 굳건한 의지가 있어야 하는 게 더 중요하다. 하지만 과학자들이 과학의 테두리에서 최소한의 자정 장치를 지키고 작동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보장해줘야 한다. 그게 사회의 일이고, 국가의 일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유전자로 밝히는 인류 진화의 비밀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