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불완전하며, '만들어지는 존재'다

텔모 피에바니, 『불완전한 존재들』

by ENA

진화는 필연적인 과정과 결과가 아니다. 진화의 결과는 완벽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조건의 타협의 결과로 불완전하다. 진화는 여러 제약 속에서 이미 존재하는 것을 고치면서 나아간다. 등등.

진화생물학자이자 생물철학자 이탈리아의 텔모 피에바니는 이 책에서 진화와 진화의 결과로서 생물, 나아가 인간이 불완전하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우주의 탄생과 태양계, 지구의 생성, 그리고 지구에서의 생명의 탄생과 진화 자체가 운명이 정해졌던 것도 아니며, 분포의 불균등과 존재의 불완전함 때문이라는 점은 우리가 자연사와 함께 인간의 역사를 바라볼 때 매우 의미심장하다. 우리의 현재는 필연적이지도 않으며, 숱한 오류를 통과하며 여기까지 왔다는 것을 알면 우리는 겸손할 수밖에 없으며, 미래에 대해서도 새로운 자세로 맞이할 수 있다.


텔모 피에바니는 이런 내용을 무척이나 유려한 필체로 그려내고 있다. 철학자답게, 자연과 인간의 불완전함을 표현하는 문구도 무척이나 간결하며 조금은 현학적이다. 경구와 같은 역할을 한다. 나도 이렇게 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을 정도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실현되지 않은 현재들은 과거의 일어나지 않은 사건들에 의해 제약된다. (31쪽)


DNA가 안정적이지 않았다면 유전적 정보를 전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정체돼 있었다면 진화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46쪽)


불완전한 행성에서 살아가야 하는 불완전한 생명체들이, 오히려 그 불완전함 덕분에 독창적으로 발전하고 번성할 수 있었다. (75쪽)


자연선택은 생명체의 우발적이고 유기적인 그리고 무기적인 조건으로 유기체를 나아지게 할 뿐, 완벽함에 이르기 위해 터무니없이 노력하지 않는다. (9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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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텔모 피에바니가 쓴 내용이라고 맨 앞에서 소개한 것은 이 책을 읽기 전에 이미 내가 알고 있던 것이다(정확히는 잘 알려진 것이다). 그걸 이 책에서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기존에 다른 저자들이 이야기했던 것을 넘어서는 것은 별로 없다. 새로운 게 거의 없다.


텔모 피에바니가 자연의 결함과 불완전함을 증명하기 위해 드는 예들도 마찬가지다. 사람이나 동물의 구조에서 보이는 불합리성, DNA의 수많은 정크 DNA에 관한 것, 우리 뇌가 가지는 기본적인 한계 등등. 다른 데서도 충분히 설명했던 것들이다. 반드시 새로운 예를 들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미 다 읽었던 것을 다시 읽는 것은, 그것도 세계적인 과학철학자라는 저자의 책에서 그렇게 하는 것은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지 않나 싶다.


물론 여기서 얘기하고 있는 것처럼 세상 천지에 새로운 것은 없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잔뜩 기대하고 있다가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을(그런 것들만을) 다시 읽게 되면 실망이 클 수밖에 없다.

그런 실망 속에서도 앞서 얘기한 대로 훌륭한 문구들을 만난 것만은 위안이 된다. 몇 가지를 더 보탠다.

완벽함과 우아함은 자연의 기준이 아니다. 중요한 건 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107쪽)


단백질을 암호화해 그 결과 알려진 혹은 예측 가능한 기능을 하는 DNA의 작은 조각은 의미 없는 망망대해의 유전적 바다에서 가설 뗏목을 타고 떠다니는 것과 같다. (141쪽)


우리는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 ’만들어지는 존재‘다. (2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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