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레비츠키·대니얼 지블랫,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답답한 마음에 읽기 시작했다. 조너선 하이트의 『바른 마음』에서 시작해서, 이 책, 그리고 역시 레비츠키과 지블랫의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를 읽는 마음이 그렇다. 무언가 해결책이 있을까 싶은 마음, 아마 쉽지는 않겠지만 상황을 이해하는 데는 도움이 될 것이라는 희망.
하버드대 정치학과 교수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은 2016년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과 이후 1년 동안 벌어진 상황을 보고 민주주의의 붕괴를 경고하는 이 책을 썼다. 미국의 어느 시점부터 미국의 양당제는 적대적으로 변하고, 서로 대립하며 민주주의를 위협하더니 급기야는 트럼프가 등장하면서 완전한 위기 상황에 몰리게 되었다는 것이 레비츠키와 지블랫의 진단이다.
그들은 20세기 이후 민주주의의 위기와 붕괴에 대한 여러 예를 보여주고 있다.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독일의 히틀러는 물론, 칠레의 피노체트,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터키의 아도르안, 필리핀의 마르코스, 아르헨티나의 페론 등등(왜 우리나라의 박정희가 여기서 언급되지 않았는지는 좀 의문이다). 그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서 정당 정치를 무력화하고,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을 억압했는지, 그리고 국민들은 왜 잠재적인 독재자를 방조하였는지를 세밀하게 분석하고 있다. 그리고 미국의 역사를 되짚고 있다.
제도적으로 미비해서였을까? 두 정치학 교수는 그건 전혀 아니라고 단언한다. 민주주의의 붕괴를 경험한 다른 나라의 헌법이 (비록 지금은 위기를 겪고 있지만) 그동안 민주주의의 절대적 옹호자를 자처했던 미국의 것에 비해 절대 문제가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헌법이나 제도 때문에 미국의 민주주의가 지켜졌던 것일까? 또 그것도 아니라고 한다. 제도는 언제나 독재자의 출현을 경고하고 그것을 막기 위한 장치를 하지만, 역시 제도는 독재자의 출현을 막지 못해왔다. 민주주의의 붕괴자들, 독재자들은 힘으로 헌정을 중지시킨 경우도 없지 않았지만, 거의 대부분은 법을 교묘하게 악용하거나, 법을 자신의 입맛에 맞게 고침으로써, 혹은 인적 구성을 마음대로 조정함으로써 행정, 입법, 사법을 틀어쥐었다. 법이나 제도가 문제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럼 무엇이 민주주의를 지켜왔고, 또 붕괴의 원인이 되었는가? 바로 레비츠키와 지블랫은 ’규범‘을 지목한다. 상호 인정과 상호 관용을 원칙으로 한 규범은 제도가 이야기하지 않는 것, 제도를 넘어서서 민주주의를 지켜왔다고 한다. 물론 제도가 민주주의의 강성 가드레일로서 역할을 해왔지만, 그 못지않게 연성의 가드레일 역할을 해온 것이 바로 규범이며, 때로는 바로 그것이 결정적이었다. 입법부와 행정부 사이의 견제와 균형은 제도적으로 보장된 것이지만, (미국을 포함한) 여러 국가의 예에서 보듯이 제도로 만들어진 가드레일은 쉽게 부식되어 버리고 만다. 그것을 보완하는 것이 바로 양식 있는 정치 지도자들, 그리고 국민들의 규범적 인식이었다고 저자들은 강조한다. 바로 그것이 21세기 들어 미국에서 무너지기 시작해서 트럼프에 들어서서는 완전히 붕괴의 위기에 처했고, 그것은 바로 민주주의의 죽음을 염려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아직 트럼프 집권 1년이 지났을 때 쓴 책이다. 저자들은 몇 가지 방향의 가능성을 예측했다. 하지만 역사는 그들이 예측한 범위를 벗어났다. 트럼프는 재선에 실패했다. 물론 이런 경우는 예측 중 하나지만, 그 원인이나 이후의 전개 과정은 이 책에는 전혀 없다. 트럼프의 낙선은 민주주의 재건의 신호가 될 것이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의사당을 점거하는 폭동이 일어나고 트럼프는 다시 선거에 뛰어들어 막상막하의 접전을 벌이고 있다. 저자들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사실 미국의 저자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는 (누가 당선될 것인가의 문제는 우리에게도 매우 중요한 문제이지만) 단순한 관심거리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 정작 문제는 우리나라의 상황이다. 이 상황을 민주주의의 위기라고 소리치는 사람이 있는가? 아마 있을 테지만, 그 목소리가 밖으로 나와 사람들의 가슴을 치고, 머리에 와 박히지 않는다.
이 책의 주요 메시지를 그냥 적용하면 제도(법)보다 규범(관례)이 우선이라는 결론이 나올 수 있지만, 사실 이는 어느 한 가지 사안에만 적용할 문제는 아니다. 규범을 인정하지 않은 책임이 어디에서부터 왔는지를 따지고, 누가 먼저 선거에 진 상대방을 몰아부쳐 죽음에 이르게 하거나 감옥으로 보냈는지 등등의 문제를 따지면 점점 과거로 갈 수밖에 없다. 물론 그 책임을 묻는 것도 의미가 없지 않다. 과거 없는 현재가 없는 것이기에. 그러나 현재가 미래를 규정하기도 한다.
민주주의는 허약하다. 민주주의의 토대는 언제나 굳건한 기반을 가지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의 양식에 기대는 측면이 많기 때문에 우리가 늘 보듬어야 하며, 감시해야 하는 것이다. 이 답답함은 금방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오랜 시간 동안 다시 쌓아올려야 하는 과제다. 문제는 붕괴에서 재건으로의 변곡점이라도 와야 하는데,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