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너선 하이트, 『바른 마음』
내가 가지고 있는 정치적 성향은 아마 분명해 보일 것이다. 어느 한쪽은 절대 찍지 못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선거에 임하고 있으니 말이다. 다른 쪽에 선택의 여지가 있다면 고민한다. 그것이 없더라도 고민은 하지만 결과가 그리 달라지지는 않는다. 그러면서 누구나와 비슷하게 우리나라의 정치 지형에 대해 무척 불만이 많다. 그러나 불만의 내용마저 똑같지는 않다. 서로 대화하고, 협치하고... 등등 그런 것은 아니니 말이다. 나는 정치인들이 자신들이 서 있는 정치적 입지에 대해 얼마나 고민하고, 정치사상이나 정치사에 대해 얼마나 공부하는지가 궁금하다. 궁금함은, 말하자면 아쉬움이고 실망이다. 진보면 진보답게, 보수면 보수답게. 이게 내가 우리나라 정치 지형에서 가지고 있는 바램이다(그러고보니 다른 이들도 나와 비슷한 바람을 가지고 있을 것 같다).
『바른 마음』을 쓴 조너선 하이트의 전공 분야는 ‘도덕심리학’이다. 도덕의 기반을 탐구해왔다. 도덕이 어떻게 형성되며, 사람들마다 어떻게 다른지를 연구해왔다. 그러다보니 진보주의자와 보수주의자가 도덕에 대해 정말로 다른 인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이 책은 그것에 대해 쓰고 있다.
도덕심리학이라는, 다소 따분해 뵈는 학문 분야 제목이지만 내용을 이해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몇 가지의 중심되는 명제를 자꾸 반복하고 있어 그 의미를 중심으로 내용을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장마다 요약하고 있으니, 저자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를 놓치지 않고 따라갈 수도 있다.
첫 번째 명제는 “직관이 먼저이고, 전략적 추론을 그다음이다.”라는 것이다. 조금 어려운 말을 쓰긴 했지만, 별로 어렵지 않다. 사람들은 어떤 행위에 대해 도덕적인지 여부를 즉각적으로 판단을 하고, 그 이후에야 그런 판단에 대한 이유를 ‘이성적으로 찾는다는 얘기다. 여기서 플라톤의 합리주의와 제퍼슨의 이성과 감정의 두 제국을 부정하고 흄의 직관주의 모델을 택한다. 그리고 그런 도덕에 대한 직관주의는 문화적으로 서로 다를 수 있다. 그러니까 도덕이라는 것은 어디서나, 어느 시기에나 일률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것이 아니란 얘기다. 즉,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로 이어진다.
다음 명제는 “도덕성은 단순히 피해와 공평성 차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라는 것이다. 이것은 저자의 연구에서 여섯 가지 도덕성 기반에 대한 연구에서 나오는 것이고, 진보주의자의 좁은 도덕성 매트릭스를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배려/피해, 공평성/부정, 충성심/배신, 권위/전복, 고귀함/추함, 자유/압제(나중에 추가)라는 여섯 가지의 도덕성 기반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고, 사람에 따라서(즉, 진보주의자냐 보수주의자냐에 따라) 어떤 것을 중시하는지가 달라지는 지를 확인한다. 진보주의자들은 배려와 공평성에 지나치게 치중한다는 것은 조너선 하이트의 연구 결과다. 반면 보수주의자는 배려와 공평성에서는 진보주의자에 비해 못미치지만 다른 것들도 거의 비슷하게 고려한다. 그는 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가난한 사람들이 보수 정당에 투표하는 이유를 전혀 알 수 없다고 본다.
마지막은 “도덕은 사람들을 뭉치게도 하고 눈멀게도 한다.”는 명제를 중심으로 내용을 이어나가고 있다. 이 부분이야말로 조금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읽을 수밖에 없다(내용을 부정한다기보다는 의아하다는 게 더 맞는 표현같다). 진화론에서 ’집단 선택‘을 옹호하고 나선다. 오랫동안 진화학계에서 부정당해온 집단 선택을 인간 진화의 한 동력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우리 본성의 90퍼센트는 침팬지이지만, 10퍼센트는 벌이다.”라는 것이다. 집단 선택을 진화의 동력 일부로 인정하는 것은 진화학자 중에도 일부 있어왔고, 조금씩 그 세를 넓히는 중이라 그럴 수 있다고 보는데, 진화학자가 아닌 심리학자가 진화적 증거가 아니라 사회학적 증거를 통해 이를 증명한다는 게 조금은 의아스럽다.
그리고 종교의 역할을 강력하게 지지하고 있다. 종교를 부정한 여러 저자들을 비판하고 있기도 한데, 역시 종교의 긍정적인 역할에 대해서 저자의 의견을 충분히 납득하고 받아들인다. 그런데... 종교의 부정적인 역할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있는 것이 조금은 찜찜하다. 물론 종교가 집단을 유지하는 데 절대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방식이라고는 이해하지만, 꼭 종교만이었나 하는 생각도 있고(저자가 앞서 비판한 WEIRD식의 생각 아닌가?), 종교가 꼭 집단의 유지에 긍정적이기만 했나 싶기도 하다.
결론은 진보주의자와 보수주의자의 상대방에 대한 인정이고, 대화다. 그런데 그 기반이 그냥 인정이 아니고 그 기반을 충분히 이해했을 때에만 진정으로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그런데 사실은 인정의 방향이나 배움의 방향은 절대적으로 진보주의자에게서 보수주의자에게로 향하는데, 이게 조금 헷갈린다. 분명 진보주의자였다는 저자가 보수주의자로 조금 전향을 한 것인지, 아니면 진보주의자로서 사람들에게 표를 받는 진보주의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인지.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는 내용도 조금 있지만, 많은 부분이 공감이 갔다. 무엇보다 이런 논의가 평범하게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