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로스, 『우리 패거리』
미국 대통령 트리키(트릭 E. 딕슨)가 미국 36대 대통령 리처드 닉슨이라는 것은 누가 봐도 확실하다. 소설이지만, 그러니 분명 허구의 이야기지만 겨냥하는 이가 너무 분명하다. 필립 로스는 등장인물들의 이름부터 희화화하고 있다 '트리키'라는 이름부터 시작하여 거의 모든 인물의 이름이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그 희화된 이름 자체만으로도 무엇을 의도하고 있는지 분명하다. 그러므로 이 소설은 그 자체로 매우 직설적이다.
필립 로스는 리처드 닉슨이 1971년 4월 3일 샌클레멘테에서 한 연설, 낙태 반대에 대한 연설을 소재로 삼아 한껏 조롱하고 비판하고 있다. 이 소설이 발표된 것이 같은 해인 1971년인 것으로 보아 연설 이후 바로 집필하였을 터다. 애초부터 닉슨의 정책이나 행보에 비판적이었을 것이고, 낙태 문제는 비록 어쩌면 사소해 보일지라도 매우 중대한 사회적 시각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았던 것 같다(미국 사회에서는 이 문제가 여전히 중대한 사회적 이슈이며, 이번 미 대선에서도 마찬가지다).
작가는 현직 대통령(아직 하야하기 전이었다)을 한껏 조롱하고 있다. 과연 이후에 필립 로스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는 모른다. 과연 무사했는지... 이런 걱정을 하는 것은 내가 대한민국에 살고 있기 때문인가? 작가가 스스로 불합리하고 정의가 아니라고 생각한 것을 거침없이 최고의 권력에 대해서도 이렇게 조롱하고, 익살을 부리고, 분노하는 것이 가능했던 게 미국의 1970년대였기 때문인지, 그 작가가 필립 로스라서 가능했던 건지도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