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맥 매카시, 『핏빛 자오선』
바람에 불꽃이 톱질하고, 잿불이 창백해졌다 진해지고 창백해졌다 마치 창자를 뽑아낸 생명체의 심장 박동 같았다. 그들은 그 안에 자신의 일부가 들어 있는 양, 마치 그 일부 없이는 열등해지다 못해 고향에서 추방당하기라도 하는 양 모닥불을 바라보았다. 하나의 불은 모든 불이었고, 최초의 불과 마지막 불은 영원히 타오를 터였다. (343쪽)
『로드』의 간결하지만 함축적인 문장과는 전혀 다른, 현란하지만 건조하다 못해 황량함을 전하는 문장. 이런 절정의 문장에 핏빛이 마구 뿌려져 있는 소설. 언뜻 아름다워 보이지만 다시 읽어보면 그 처연함에 몸서리쳐지는 문장들이 가득한 소설. 모두가 생존의 욕망을 가지고 있지만, 그 욕망이 거침없이 부정당하는 소설. 이런 소설이 바로 코맥 매카시의 『핏빛 자오선』이다.
주인공은 ‘소년’이라고만 지칭되고 이름이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그에 반해 서로 반대의 세계관을 상징하는 전직 목사와 판사는 같은 이들은 이름이 있다. 그런데 전직 목사나 판사, 미국인 용병 대장 등은 실제의 인물을 모델로 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 실제 인물들의 세계 사이에서 살아남는 주인공만이 허구의 인물이라는 것은 상징적이라 생각한다. 전직 신부와 판사 사이에서 휘청거리며 겨우겨우 살아남는 소년은 존재하는 듯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인물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런 상황을 당사자의 시각과 제3자의 시각 모두에서 바라보는 인물이 바로 소년인 셈이다. ”미국인이며, 고향에서부터 멀리 떠나왔으며, 가족은 없고, 많은 곳을 여행하고, 많은 것을 보았으며, 전쟁에 참전했고, 역경을 이겨“냈지만, 결국은 그런 인물은 없었던 것처럼 여겨진다. 혹은 누구나 그랬던 것일 수도.
코맥 매카시는 이름도 부여하지 않은 소년을 통해 19세기 미국과 멕시코 국경을 무대로 묵시론적 세상을 보여주고 있다. 멕시코 정부가 고용한 미국인 용병 부대의 무참한 행태(머리 가죽을 벗겨 그 개수로 돈을 쳐서 받아 갔다)는 미국인의 원형이 절대 선하지 않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선함과 악함을 넘어서서 살아남기 위해서 그렇게 악랄해야 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게 미국이라는 국가, 사회를 만들었다. ‘빵의 공유’가 아니라, ‘적의 공유’를 통해 존속해야 했던.
놀라울 정도로 시적인 문장이 묵시론적인 세계를 그려낼 때, 그 세계는 더욱 처절해진다. 이 소설을 그걸 알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