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국경을 넘으며 맞닥뜨린 잔혹한 세상

코맥 매카시, 『국경을 넘어』

by ENA

『국경을 넘어』 <옮긴이의 말>에서 번역가 김시현은 다음과 같이 짧게 이 책의 내용을 요약하고 있다.


”늑대에 대한 편견과 경제적 이득 때문에 늑대를 박멸시킨 미국에 늑대 한 마리가 건너온다. 늑대를 사로잡은 소년은 늑대를 죽이는 대신 멕시코로 되돌려 보내려고 긴 여행을 떠나지만 잔혹한 세상 앞에 부딪히고 패대기쳐진다."


이 요약은 이 소설의 핵심을 정확히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너무 함축적이다. 그래서 이 요약을 근거로 나의 읽은 감상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핏빛 자오선』과 마찬가지로 미국-멕시코 국경을 무대로, 소년을 주인공으로 쓰고 있다. 『핏빛 자오선』에서는 소년이 주인공이긴 하지만 이름도 없고, 마치 관망자면서 동시에 참여자인 위치였다면, 『국경을 넘어』에서는 분명한 이름을 가지고 있고(빌리), 모든 스토리가 그를 중심으로, 그의 행동과 말, 느낌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소설이 전개되는 동안 서너 살 나이가 들면서 청년이 되는 과정이 펼쳐지는데, 그 사이에 그 소년은 성숙해지고,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보다 깊어진다.


이야기는 늑대에서 시작된다. 뉴멕시코의 농장의 가축이 늑대에게 죽자 빌리와 동생 보이드는 아버지와 함께 늑대를 잡기 위해서 덫을 놓고, 결국 늑대는 잡힌다. 그런데 늑대를 잡은 소년 빌리는 늑대를 죽이지 못한다. 늑대에 특별한 감정을 느끼게 되고 늑대를 돌려보내기 위해 국경을 넘는다는 인식도 없이 멕시코 땅에 들어간다. 거기서부터 비극과 잔혹한 경험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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갖은 고난 끝에 당도한 멕시코의 어느 목장에서 빌리는 늑대는 빼앗기고 만다. 늑대는 투견장에서 잔인하게 상처를 입고 죽어가는데, 고통에 괴로워하는 늑대를 소년은 총으로 쏘아 죽이고 만다. 그리고는 내버려두지 못하고 대신 자신이 가지고 있는 돈 전부를 주고 늑대 시체를 사서 묻어준다. 소년은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국경을 넘는다.


돌아온 집에서 맞닥뜨린 상황은 비극이었다. 부모님은 인디언에게 살해당하고 동생 보이드만 살아남았다. 말들은 전부 사라져버렸다. 빌리는 보이드와 함께 말을 찾기 위해(왜 그 말들을 찾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없다. 짐작만 가능할 뿐) 다시 국경을 넘는다. 일부 말을 찾았지만, 결국 동생은 총을 맞고 사경을 해매다 겨우 살아난다. 그런데 살아난 동생은 국경을 넘으며 만난 소녀와 함께 사라져버린다.


빌리는 미국으로 돌아와 군인이 되려 했으나(아마도 2차 세계대전 무렵이지 않았을까?) 건강검진에서 거듭 불합격 판정을 받고 입대에 실패하고 만다. 몇 년이 지나 빌리는 동생을 찾기 위해 다시 국경을 넘는다. 그렇게 세 번째로 국경을 넘는데, 결국 빌리는 동생을 시체로 맞닥뜨리고 만다.


이런 것들이 소년이 내던져진 잔혹한 세상이다. 이것을 그저 여행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처절하다. 이것을 모험이라고만 하기에는 너무나도 사회적이다. 개인적 선택이 있었지만, 그 개인적 선택만으로 소년의 맞닥뜨린 세상이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문체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코맥 매카시이므로). 『핏빛 자오선』의 극도의 긴장스런 시적 문체는 조금 누그러졌다. 하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문장들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함축보다는 이해를 더 구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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