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술 속에 진리(in vino veritas)가?

마크 포사이스, 『주정뱅이 연대기』

by ENA

술. ㅎㅎㅎ (괜히 미소가 지어져서...)


술 얘기는 재미있다. 술이 가진 속성처럼(이에 관해서는 고종석이 ‘술’이라는 말을 잘게 나눠 잘 분석한 적이 있다) 진짜 이야기가 가짜 이야기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교묘하게 섞여진 이야기라서 더욱 그렇다. 술 마시면서 들은 얘기를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확인이 들지 않는 것은, 술 마시면서 새가 한 얘기가 어디까지 진실인지를 나도 잘 모르는 것과 비슷하다. 그러니 술에 관한 얘기라고 별로 다르지 않을 것이란 짐작도 가능하다.


그래도 거를 수 있는 이야기는 있을 것이다. 그렇게 완벽하게 진짜 얘기만을 걸러내 한 권의 책을 만들어낸다면... 아마도 가장 재미없는 술에 관한 책이 되고 말 것이다. 술은, 말하자면 양면을 가지고 있으며, 경계를 넓게 가지고 있다(술 얘기를 하면서 이렇게 진지하게 표현하니 나도 어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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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포사이스는 술에 관한 농담과 진담을 잔뜩 섞어가며 책을 썼다. 그래서 읽는 동안 잔뜩 긴장하며 읽어야 할뻔했다. 그래도 술은 마시지 않은 채 읽었으니, 적어도 진담과 농담을 완전히 뒤바꿔 읽지는 않았을 것이라 자부한다. 그렇게 읽은 이 책에서 진담과 농담이 헷갈리는 얘기를 하나 하자면 다음과 같은 게 있다.


1914년 러시아 차르 니콜라스 2세는 보드카 판매를 금지했다. 그리고 4년 후 차르와 그의 가족은 모두 예카테린부르크의 한 지하실에서 처형되고 말았다. 그리고 약 70년 후 1985년 소련 공산당 서기장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금주 운동을 시작했다. 그럴 만도 했던 게 러시아인들이 너무 술을 좋아한다고 여겼다. 그리고 그는 진심으로 알코올이 필수품은 아니라고 했다. 그리고 6년 후 소련은 무너졌다.


어쩌면 이 책 전체 이야기가 이 러시아 얘기와 일맥상통한다. 술은 분명 즐거움을 주지만 피폐함을 주기도 한다.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기도 하지만, 그것 자체로 몰락의 징조가 되기도 한다. 술을 마시고 에너지를 얻기도 하지만, 에너지를 앗아가기도 한다. 유혹의 수단이기도 하지만, 술 때문에 인간관계(남녀관계를 포함해서)를 망치기도 한다. 술 때문에 일어나는 사고가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술 때문에 좋아지는 관계는 또한 얼마나 많은가. 술은 생겨난 이래 없애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무조건 찬양하지도 못하는 존재다. 그래서 금지하면서도 안에서는 잔뜩 취했던 지배자들도 많았다. 그만큼 이율배반적인 존재가 바로 술이다.


그런데 이렇게 매우 이성적으로 쓰면서도, 나는 술을 마다하지는 않는다. 그게 이율배반적인 존재라고 해서 좋은 점만을 쏙 빼서 내 것으로 만들겠다는 강력한 술을 마시는 것도 아니다. 그냥 좋아서, 혹은 어쩔 수 없어서, 아니면 그냥... 마신다. 술은 그런 거다.


다시 술에 관한 몇 가지 어록(당연히 이 책에 등장한다)을 인용하면서 술에 관한 책을 매우 진지하게 읽은 감상문을 마친다.


”고대 페르시아인은 중요한 정치적 선택을 해야 할 때, 그 문제를 놓고 한 번은 취한 상태로, 한 번은 취하지 않은 상태로, 두 번 토론을 벌였다고 한다. 두 번 모두 같은 결론에 도달했을 때야 비로소 그들은 그 결론을 행동에 옮겼다고 한다.“


”아페리티프 효과(aperitif effect). 한 마디로 말하자면 알코올의 맛, 알코올의 냄새가 식욕을 증가시키는 현상“


”벤저민 프랭클린이 와인의 존재야말로 ‘신이 우리를 사랑하며 우리가 행복해하는 것을 보기 좋아하시는 근거’라고 했던 말“


그리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라틴어

”in vino veritas“ (술 속에 진리가)




* 그런데 꼭 언급하고 싶은 게 있는데, 책의 번역자는 저자가 못 미더운지, 아니면 독자를 그렇게 생각해서인지 참 많이 독서에 간섭하고 있다. 저자의 말을 해설해주고, 고쳐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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