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사라마구, 『예수 복음』
주제 사라마구는 199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지명되었다. 그때 로마 교황청은 이 결정에 유감을 표했다. 바로 이 작품 『예수 복음』 때문이었다. 주제 사라마구는 이미 이 작품을 출간한 후 포르투갈을 떠나 살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 문제작이라는 의미이며, 이미 그의 명성이 그런 문제작의 의미를 더할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얘기다.
주제 사라마구는 예수의 행적을 소설적으로 재해석하고 있다. 성경에 적힌 여러 행적 자체를 부인하지 않지만, 거기에 담기지 않은 부분을 채워나감으로써 예수 행적의 의미를 새로이 파악하고 있다.
로마 교황청은 예수 행적을 재해석한 이 작품을 신성모독이라 보았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면이 그럴까? 그리고 그렇게 재해석한 까닭, 그런 재해석한 것을 신성모독인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성경을 잘 모르므로, 가톨릭의 교리를 잘 알지 못하므로 이를 자세히 파악해낼 수는 없지만, 그래도 주제 사라마구가 무엇을 전복하려고 했는지, 어느 정도는 짐작할 수 있다(그래야 대중에게 다가가는 소설이 될 수 있으니까).
이야기는 요셈과 마리아의 성행위로 예수가 수태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여기서부터 동정녀 마리아라는 신화를 부정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과학적으로 동정녀의 수태라는 것이 납득되지 않기에 그 신화를 신화로 보고, 이것이 큰 신성모독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나중에 예수 앞에 나타난 하나님이 요셉의 씨에 자신의 씨를 심었다고 하니 예수의 신성이 납득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어지는 예수의 행적, 예수가 다른 아이들의 희생을 대가로 살아남은 일, 마리아와의 불화로 집에서 나온 일, 목자로 변신한 악마와 4년을 지낸 일, 막달라 마리아와의 지극히 인간적인 관계를 맺은 일 등은 예수가 신성을 가진 인물이긴 하지만, 또한 인간으로서의 약점도 분명하게 지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주제 사라마구의 해석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결정적인 것은, 십자가에서 죽음의 순간 “자신이 (하나님에게) 당했다는 것을 알았”차린 일이다. 예수는 사람의 아들이면서,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그의 죽음은 하나님의 계획, 즉 하나님, 즉 유대인의 신을 지상에서 많은 사람들이 신봉하게 하는 정교한 계획의 일환이었음을 깨닫는 것이다. 말하자면 예수는 신성을 지녔지만, 순진했으며, 하나님은 선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것과 함께 주제 사라마구가 기독교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으로 보는 시각은 하나님의 입으로 예수 이후에 하나님을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죽어간 이들을 여러 페이지에 걸쳐 예언(혹은 회상)하는 장면에서 확실하게 드러난다. 수많은 사람이 믿음 때문에 죽어갔다. 하나님은 그것을 알면서도 방치했다는 얘기다. 그게 아니라면 하나님은 무기력하거나, 그 믿음 때문에 죽은 것이 어쩌면 무의미한 죽음이었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거기에 종교의 이름으로 벌어진 전쟁과 종교재판 등등 역시 마찬가지다.
이 이야기를 현재의 기독교인은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궁금하다. 아니, 어디까지 받아들일 수 있는지 궁금하다. 그저 황당무계한 소설로? 제법 의미 있는 가설로? 아니면 성경에 대한 고려해볼 수 있는 해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