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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청이 인간, 그러나...

데이비드 로버트 그라임스, 『페이크와 팩트』

by ENA


『시간의 지배자』에서 토머스 서든도프 등은 예지력, 즉 과거의 경험을 통해 미래를 대비하고 계획하고, 반성하는 능력을 인간의 독특한 능력이며, 성공의 열쇠라고 봤다. 『페이크와 팩트』에서 데이비드 로버트도 거의 비슷하게 보고 있다. 데이비드 로버트 그라임스는 인간이 가진 가장 뛰어난 기술이자, 최고의 능력을 “사고하고 반성하며 추론하는 능력”이라고 쓰고 있는데, 바로 이것이 토머스 서든도프 등이 얘기하는 예지력과 별 다를 바 없다.


그러나 데이비드 로버트 그라임스의 『페이크와 팩트』와 토머스 서든도프의 『시간의 지배자』는 인간에 관한 완전히 다른 접근법을 취하고 있다. 『시간의 지배자』가 인간이 다른 동물과 왜 다르며, 어떻게 성공해왔는지를 이야기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앞으로 어떻게 위기를 극복해 나갈 것인지를 다루고 있다면, 『페이크와 팩트』은 반대로 인간의 실패를 이야기한다. 인간이 얼마나 비합리적인 존재인지, 거짓을 잘 퍼뜨리고, 또 잘 속는지가 주 내용이며, 그것을 이겨내기 위해서 무엇인 필요한지를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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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크와 팩트』를 보면, 사람이 얼마나 멍청한 존재인지에 대한 깨알같은 보고서 느낌이 난다. 우선 논리에 약하다. 삼단 논법과 같은 논리를 세웠지만, 그 논리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도 많다. 진실은 단순하지 않음에도 상황을 굉장히 단순화시켜 받아들이고 왜곡한다. 사실을 조작하는 경우도 많다. 사이비 신앙이 그렇고, 기후 위기를 부정하는 것도 그렇다. 우리의 기억은 매우 불완전하고, 감각에 의존하는 것도 위험하다. 우리는 믿어야 할 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믿고 싶은 것을 믿는 경향이 너무도 강하다.


확률과 통계는 우리의 판단 능력을 강화시켜준다. 그러나 우리는 숫자에 약하다. 그래서 제대로 확률과 통계를 이용하지 못한다. 또한 확률과 통계를 의도적이든, 실수로든, 아니면 무지해서든 왜곡해서 받아들인다. 그런 상황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이들도 있다. 언론은 또 어떤가? 기계적인 중립이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경우를 트럼프를 통해서 볼 수 있고, 편향된 목소리만 가득한 SNS를 마주친다.


그렇다면 과학은 어떤가? 저자는 과학자다. 그러므로 저자는 과학에 기대어야 한다고 한다. 과학은 그럴만한 충분한 자격을 갖추고 있다(이렇게 얘기하는 나도 과학자이긴 하다). 그러나 조심해야 한다. 과학이 과학으로서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선 역시 인간의 오류를 인지해야 하고, 그것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과학과 과학이 아닌 것을 구별해야 하며, 유사과학을 배제해야 한다. 회의주의를 갖되 냉소주의를 배격해야 하며, 회의주의를 가장한 과학 부정주의에 눈을 돌려선 안된다.


우리는 수도 없이 멍청한 결정을 해왔다. 그러나 또한 이만큼의 세계를 만들어왔다. 이 세계가 엉망진창이라고는 하지만, 지구상에서 이런 세계를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인간뿐이다. 그 이유는 그 멍청한 결정들 가운데서도 제대로 된 결정들이 있었다는 얘기다. 그것은 또한 우리가 우리의 불합리성을 극복할 수 있는 자질을 갖고 있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가짜 뉴스와 비과학적, 반과학적 운동에 분연히 맞서왔던 저자는, 우선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우리가 오류를 저지를 가능성을 알고, 어떻게 오류와 비합리성을 구분해낼 수 있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고 절대 멍청한 결정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얼마 안 가 제대로 된 길로 접어들 수 있다. 그리고 다시 강조한다. “과학자처럼 생각하고, 반응하기 전에 숙고하며, 감정보다는 증거를 따라가고, 항상 자신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정말 어려운 일도 아니다. 정신 차리면 된다. 우리는 과거를 통해서 반성하고, 미래를 계획할 줄 아는 동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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