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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시간의 지배자로 만든 예지력

토머스 서든도프‧조너선 레드쇼‧애덤 벌리, 『시간의 지배자』

by ENA

저자들은 인지심리학자다. 인지심리학이 어떤 건지 잠깐 찾아보면, 인간의 고차원적인 정신 과정의 특징과 작용 방식을 해명하는 학문 분야라고 되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분야가 과학적, 기초적 심리학의 한 분야라는 점이다. 그러니까 인간이 어떻게 지각 능력을 가지게 되었는지, 지각 능력을 어떻게 활용하고 축적하며, 발전시켜왔는지, 즉 인간이 어떻게 인간이 되었는지를 과학적으로 탐구하는 학문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내용이 그렇다. 인간이 지구의 지배자(조금은 조심스러운 표현이긴 하다)가 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추적하고 있다. 그것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예지력’이라고 하는 것이다.


여기서 ‘예지력’이란 말을 오해하면 안 되는 것이, 미래를 예언하는 능력, 이를테면 점(占)이라든가, 혹은 초감각적인 능력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저자들은 예지력이라는 말을 인간이 과거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미래를 예견하고, 그에 대한 대비를 하는 능력을 가리키는 데 쓰고 있다. 그리고 이 표현은 ‘멘탈 타임머신’이라는 말로도 대체가 되는데, 이 말은 인간의 정신이 일종의 타임머신으로서 과거의 일을 다시 되새기고, 그것을 바탕으로 미래를 예측한다는 의미로 쓰고 있다. 바로 그런 능력, 인간만이 가지고 있다고 거의 믿어지는 예지력, 멘탈 타임머신의 능력으로 인해 인간이 과거와 현재를 넘어서서 미래를 설계하면서 앞으로 나아갔고, 그래서 현재에 이를 수 있었다고 보고 있다. 인간은 ‘미래’를 발견한, 아니 발명한 유일한 지구상의 동물이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가장 우선적으로 필요한 사항은, 가장 인상 깊게 받아들인 점이기도 한데, 과거로의 여행과 미래로의 여행이 거의 동일한 가치와 특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저자들의 연구 결과를 보면, “어제 한 일을 기억하는 능력과 내일 할 일을 보고하는 능력 사이에 연관성”이 있다고 한다. 즉, 인간은 과거를 기억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으며, 그것이 있기 때문에 미래를 대비하고 계획할 수 있는 능력을 발달시킬 수 있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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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한 달, 1년의 규칙성을 발견하고, 시간을 측정하는 방식을 개발하고, 사회적 협력을 통해서, 혁신의 과정을 통해서 벼리고 벼린 능력이 바로 예지력이다. 이렇게만 보면, 그냥 사변적인 주장 비슷해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저자들은 인지심리학자답게 다양한 ‘과학적’ 증거를 제시하고 있다. 동물에 대한 실험, 인간에 대한 (간접적) 실험,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통찰을 통해서 인간이 과거와 미래를 연결시켜 현재를 살아가는 동물이라는 점을 ‘증명’하고 있으며, 바로 그런 특성으로 인해 지구에서 가장 널리 퍼져 있으며, 인위적으로 지구를 바꾸어 갈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고 보고 있다.


그렇다고 저자들의 작업을 단순히 인간 존재에 대한 예찬으로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물론 인간이 거두어온 성취에 대해서는 충분히 자랑스러워할 만하다. 우리는 지구 상에서 시간을 인식하면서, 그 시간을 쪼개고, 미래를 위해서 현재를 보류할 줄 아는 유일한 동물이니까 말이다. 그렇게 우리는 새로운 시대를 만들었다. 그것을 우리는 ‘인류세’라고 부른다. 이 인류세라는 말에는, 사실 긍정적 뉘앙스보다 부정적 뉘앙스가 더 깊이 새겨져 있다. 저자들은 인간의 예지력이 인류세를 만들었고, 그리고 그것이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높였다고 쓰고 있다.


인류세의 재앙에 대해서는 수많은 저자들이 이미 다루었고, 다루고 있으며, 앞으로 다룰 것이다. 그런데 저자들은 바로 위기를 극복할 원천도 인간의 예지력, 멘탈 타임머신에 달려 있다고 보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예지력이란 과거, 즉 우리가 만들어온 이 위기의 세상을 인지할 능력이 있으며, 미래, 즉 그것을 극복해낼 지혜를 짜낼 수 있는 존재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이 책은 인간으로서의 자부심과 과제를 동시에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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