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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모론을 해부하다

마이클 셔머, 『음모론이란 무엇인가』

by ENA

평생 음모론을 연구하고, 음모론과 싸우고, 이를 교정해온 마이클 셔머가 이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사람들이 왜 음모론을 믿는지, 진짜 음모와 음모론은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지, 음모주의자와 어떻게 대화하고, 어떻게 진실에 대한 신뢰를 회복해야 하는지를 3부에 걸쳐서 이야기하고 있다.


우선은 음모와 음모론(혹은 음모주의)을 구분하고 있다. 실제로 음모는 있다. 그러나 음모론은 실제 벌어진, 벌어지는 음모와는 거리가 멀다. 증거를 변형하고 왜곡하고, 증거의 작은 틈새, 즉 우연을 부정하면서 확대 해석해서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내는 것이 음모론이다.


그렇다면 음모론을 믿는 이유는 무엇일까? 마이클 셔머는 이를 세 가지로 정리하고 있다(나는 이 정리가 참 마음에 들었다).


첫째로는 대리 음모주의다. 역사적 진실, 경험적 진실의 대리자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권력 기관이라든가, 권위 있는 위원회에 대한 불신을 바탕으로 기존의 진실에 대한 대리적 역할을 음모에 맡기는 것이다.


두 번째로는 부족 음모주의다. 이는 정치적, 종교적, 사회적, 이념적 정체성이 핵심 요소다. 이를테면 보수파는 오바마의 출생에 대해 음모론을 지지하며, 진보파는 트럼프의 2016년 대선 승리에 대한 음모론을 굳게 믿는다. 자신이 가진 부족적 정체성이 음모론이 바탕이 되는 것이다.


세 번째는 건설적 음모주의다. 이것은 인간의 심리적 본성과도 연관이 깊다. 음모론을 거부했을 때 이것이 사실로 드러난 경우 입는 피해보다 음모론을 믿었을 때 그것이 거짓이 드러났을 때 입는 피해가 적다는 심리적 방어 기제와 연결이 된다. 이는 음모론을 믿는 것이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간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도 있는 기제라고 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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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 말고도 다른 연구자의 연구 결과를 인용하여 음모론적 믿음에 세 가지 동기도 이야기한다. 인식론적 동기, 실존적 동기, 사회적 동기가 그것인데, 이 역시 음모론이 어느 정도의 심리적으로 이해할 만한 기제를 가지고 있다는 얘기가 되기도 한다. 즉, 세계에 대한 인과적 설명을 찾으려고 한다거나(인식론적 동기), 자신의 환경에서 안정과 안전을 느끼고, 통제하고자 하는 욕구를 갖고자 한다거나(실존적 동기), 자신이 속한 집단에 대해 소속감과 긍정적 인식을 유지하고자 한다거나(사회적 동기) 하는 동기로 해석할 수 있다면 음모론을 믿는 것을 이해‘는’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음모론은 매우 위험하다. 그건 진실이 아니고, 세상을 왜곡해서 바라보고, 또 나아가서는 전혀 무관한 사람들에게까지도 피해를 입히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이 이렇게 음모론을 믿는 심리적 기제까지 밝히고자 하는 것이다.

마이클 셔머는 실제로 여러 음모론에 대해서, 그것이 어떤 식의 것인지, 그리고 어떤점에서 문제가 있는지를 깊게 따지고 있기도 하다. 가장 깊게 따지고 있는 것은 존 F. 케네디 암살과 관련한 음모론이다. 다른 음로론과는 달리 여기서는 여러 사진을 동원해 가며 그 음모론이 왜 음모가 아니라 음모론인지를 까다롭게 밝히고 있다. 몰론 다른 것도 상당히 어처구니 없는 이유로 믿고 있음을 밝히고 있기도 하다(우리가 잘 모르고 있는 것도 없지는 않지만, 대부분은 우리도 쉽게 접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런데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음모론을 믿는 것이 보수나 진보 한 쪽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또한 앞서 심리적 기제에 대해서 이야기한 이유이기도 한데, 그게 바보라서 그런 것도 아니다. 좌파나 우파나 다 같이 얼토당토 않은(혹은 그럴 듯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은) 음모론을 깊게 믿을 수 있으며, 사회의 엘리트라고 불리는 이들도 그럴 수 있다. 우리는 음모론에 취약하다.

우리가 음모론에 취약하다는 점은, 많은 영화 등이 음모론을 다루고 있고 그것을 우리는 즐기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떤 사건의 이면에 우리가 모르고 있던 무엇인가가 있다는 상상은 흥미로운 것이기도 하거니와, 그럴 듯하기도 하며, 우리가 이렇게 이 모양, 이 꼴로 살아가는 이유를 설명해주는 진짜 진실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실제로 진짜 음모도 있었다는 점도 중요하다. 그래서 음모론을 믿는 것이 덜 손해본다는 부족적 음모주의가 나오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진짜 음모와 음모론을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마이클 셔머는 그 기준을 몇 가지로 제시하고 있기도 하며, 음모주의자와 대화하는 법을 제시하고 있기도 하다. 사실 어떤 특별한, 한두 가지의 기준이 있는 것도 아니고, 완전히 확실한 기법이 있는 것도 아니란 게 힘든 점이지만, 가장 중요한 점은 회의주의(skepticism)의 태도가 아닐까, 나 스스로 정리해보기도 한다.


끝으로 저자와 동료들이 조사한 결과(얼마나 많은 사람이, 어떤 사람이 어떤 음모론을 믿는지)를 배치하고 있는데, 가장 놀라운 것 중 하나는 코로나19 백신에 감시 칩을 심어 놓았다는 음모론(그야말로 음모론이라 생각한다)에 13%나 동의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지구 온난화가 정치적 인기에 영합한 자유주의 엘리트와 과학자들이 영합한 주장이라는 음모론에는 22%나 동의한다는 것(맙소사!)이다. 데이터가 필요 없다는 얘기인데... 음모론은 정말 어쩔 수 없는 것인가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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