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 다트넬, 『인간이 되다』
다 읽고 나니 묘한 주제의 책이란 생각이 든다.
원제나 우리말 제목을 보면, 인간이 어떻게 지금과 같은 인간이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즉 인간으로서의 모습, 인간으로서의 두뇌와 심리 등등. 그런데 또 부제를 보면, ‘인간의 코딩 오류’를 언급하고 있어서 인간의 인간으로서의 문제점과 한계를 다루고 있는 것으로도 여겨진다. 혹은 인간이 그런 한계가 있음에도 지금의 문명을 일군 원동력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이 책은 그 모든 것을 다루고 있다.
그런데 나는 그 모든 것을 다루는 방식, 아니 그 기저에 놓인 학문적 배경이 더 관심이 가고 묘한 느낌이 든다. 저자가 <머리말>에서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듯이 바로 ‘생물학’이 이 모든 이야기의 배경이고, 뿌리이며, 결론이다(“이 책에서 우리는 인류학과 사회학의 최신 연구를 바탕으로 일상생활에서 얼마나 많은 측면이 우리의 생물학에 깊은 뿌리를 두고 있는지 살펴볼 것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인간의 생물학을 다룬 책이다. 이런 책이 많을 것 같지만, 따지고 보면 별로 없다. 그래서 묘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여덟 장(chapter)에 걸쳐 인간의 생물학과 그 생물학의 성과와 한계를 다루고 있다. 생물학이라고 하더라도 인간의 뼈가 어떻고, 기관이 어떻게 작동하고 등등의, 그런 류의 생물학은 아니다. 다시 한번 저자가 <머리말>에 언급한 문장을 자세히 보면, 생물학은 뿌리다. 그 뿌리에서 우리의 문명을 위한 소프트웨어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우리의 사회, 가족은 어떻게 구성되는지를 먼저 이야기한다. 마지막에는 우리의 코딩 오류와 인지 편향, 그러니까 생물학적 한계를 깊이 다루고 있다.
내가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을 부분은, (당연히) 3장과 4장의 감염 질환에 관한 부분이다. 저자는 특별히 이 내용을 두 장에 걸쳐서 다루고 있다. 그만큼 인간의 과거와 현재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눈 여겨 본 점은, 두 개의 장으로 나눈 기준이다. 바로 풍토병(endemic)과 유행병(epidemic)이다. 이 구분이 그렇게 뚜렷하지 않은 경우도 많지만, 저자는 이 구분을 통해서 인간이 감염질환에 어떻게 대응을 했고, 혹은 어떻게 이용했고, 그리고 인가의 역사에서 어떻게 물줄기가 바뀌었는지를 명백하게, 그리고 신랄하게 다루고 있다. 간단히 얘기하자면 풍토병에 관한 부분에서는 아프리카의 풍토병이었던 말라리아와 황열병이 아메리카로 건너가 식민지를 건설하고, 비인간적인 노예무역을 가능케 했는지에 관한 것이고, 유행병에 관한 내용은 고대 세계의 유행병(아테네 역병, 키프리아누스 역병, 유스티아누스 역병)에서 비롯해서 흑사병, 천연두, 1918년의 스페인 독감 팬데믹까지를 다룬다. 역시 이 질병이 사회에 미친 영향이 결론임에는 변함 없다.
그런데 이 책에서 가장 의외의 내용은 바로 그 다음 장(5장)이다. ‘인구’라는 제목부터 의아스럽다. 저자는 인구, 즉 어떤 사회, 주로는 국가의 사람 수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한다. 결국은 인구가 그 사회의 발전을 추동했다는 것이다. 농업의 시작이 여러 문제가 있었음에도 인류에게 보편화된 이유도 바로 그것이었고, 여러 전쟁의 승패도 바로 인구에 의해 결정되었다. 전쟁이 인구에 미친 영향도 다른 데서는 거의 읽지 못한 내용이다. 소련이 제1차 세계대전,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수많은 청년이 목숨을 잃게 되었고, 그런 까닭으로 비정상적인 인구 구조를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영향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매우 설득력 있는 자료를 통해 제시하고 있다. 물론 그 나라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지금 우리도 귀기울여 살펴봐야 할 역사적 근거다.
전체적인 제목을 보면 기존의 책과 별 다를 것 없어 보였지만, 내용은 그렇지가 않다. 역사적 예들이 신선했고, 다루는 방식도 다르다. 그래서 재미있고, 흡인력이 있다. 지겹지 않다. 그리고 통찰력도 있다. 루이스 다트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