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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멸종, 지구가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문제다

이정모, 『찬란한 멸종』

by 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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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모 관장. 무려 12년이나 공립과학관의 관장을 지냈기에 ‘관장’이란 명칭이 자연스레 붙는다. 대학에 있다 자신이 커뮤니케이터, 스토리텔러로서 더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교수직을 관두고 이쪽으로 돌아섰다고 한다. 그 재능은 물론 말하기에서도, 글쓰기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이미 여러 차례 고개를 끄덕였고, 이번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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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의 주제는 멸종이다. 그런데 제목이 언뜻 아이러니하다. 멸종인데 찬란하다니. 그런데 설명을 들어보면 무슨 의미에서 그렇게 제목을 지었는지 이해가 간다. 진화사는 멸종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진화를 통해 다양성이 증가한다고 하는데, 그건 맞는 얘기이기도 하지만, 추가 설명이 필요하다. 무조건 그런 방향으로만 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새로운 생물이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앞선 생물이 자리를 비켜줘야 하는 것이고, 그 과정은 멸종으로 드러난다. 지금 이 지구에서 살아 있는 모든 생물은 40억년이 넘는 지구의 역사 동안 무수히 멸종해간 생물을 딛고 이 자리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멸종은 ‘찬란한’ 진화의 중요한 과정일 뿐이다. 새로운 생명이 탄생되는 바탕이 되는 과정이다.


지금까지 다섯 차례의 대멸종이 있었다. 소소한 멸종은 언제라도 있었고, 지금 이 순간에도 벌어지고 있다. 우리에게 가장 인상 깊은 대멸종은 지금으로부터 약 6600만 년 전에 벌어진 다섯 번째의 대멸종이다. 공룡이 멸종되고, 이후로 숨죽여 지내던 포유류가 번성하기 시작한 사건이다. 그런데 실은 그게 인상 깊어서 그렇지 가장 대규모의 멸종은 당시 종의 95%가 사라지고 만 2억 5100만 년 전, 즉 고생대 페름기 말의 멸종, 세 번째 대멸종이다. 그런 대멸종 사건을 포함해서 지구상에서 벌어진 초토화의 사건은 다섯 차례 있었다는 얘기다.


이정모 관장은 이 다섯 차례의 멸종을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가며 이야기하고 있다. 시간을 거슬러 가면서 이야기하는 것 자체도 특이한데, 그 이야기를 건데는 주체가 바로 당시의 생물이라는 점은 더 특이하다. 이를테면 고생대 페름기 말 세 번째 대멸종 시기의 화자는 디메트로돈이라고 하는 생물이다. 생김새와는 달리 공룡도 아니고, 파충류도 아닌 단공류에 속하는 생물이다. 물론 공룡이 주인공인 경우도 있고, 좀 더 최근으로 와서는 마지막 네안데르탈인을 화자로 삼기도 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그 시대에 보다 친근하게 접근하고, 조금은 관점을 달리 해서 볼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물론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하게 얘기하고 싶었던 것은 여섯 번째 대멸종, 즉 지금 벌어지고 있는 사건에 관한 얘기다. 이 여섯 번째의 대멸종은 이전 다섯 번째의 대멸종과는 상황이 다르다. 이전의 대멸종은 지구에 살고 있는 생물들이 어찌 해 볼 수 있는 자연 현상에 의한 것이었다면, 지금의 대멸종은 분명한 생물적 요인이 존재한다. 바로 인간이다. 그런데 더욱 특이한 점은 인간이, 즉 우리가 이 대멸종을 인식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아마도 이전의 대멸종 때 그런 것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당시의 생물들은 인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책의 설명과는 달리),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도 알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것을 위한 기술도 95%를 이미 지니고 있다. 다만 하지 않을 뿐이라는 것이다.


대멸종이 벌어지면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하다고 한다. 최고 포식자는 반드시 멸종한다는 것이다. 또 최고 포식자가 아니더라도 생물량이 가장 많은 생물은 반드시 멸종한다. 그런데 최고 포식자와 생물량이 가장 많은 생물이 일치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 어려운 일을 해낸 존재가 있다. 바로 인간이다. 그래서 지구상에 존재했던 생물 중에서 가장 성공적인 생명체가 바로 인간이라고 하는 것이다. 바로 그 성공 때문에 다음 대멸종에서 인간이 살아남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기후온난화(상황에 비해 매우 부드러운 표현이다)로 인해 다른 생물의 사라지는 것을 걱정한다. 그런데 그럴 상황이 아니다. ‘다른’ 생물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냥 ‘거의 모든’ 생물이 사라지는 것이다. 그 거의 모든 생물에는 반드시 인간, 호모 사피엔스가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사라진 자리에 새로운 생물이 나타날 것이다. 찬란한 멸종이다. 지구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 것이다. 우리는 지구를 걱정할 게 아니라 우리, 인간을 걱정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술과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 정말 재미있게 읽고, 많은 생각을 하면서 읽고, 새로운 것도 많이 배웠는데, 딱 한 가지만 지적하자면, 320쪽의 그림 설명이다. “박테리아(세균)는 크기가 너무 작아서 스스로 생명 현상을 유지하지 못한다.”라고 되어 있다. 사실 본문의 내용은 바이러스에 관한 것이고, 그래서 바이러스에 관한 그림이면 더욱 좋을 것이다. 그리고 내용도 잘못되었다. 스스로 생명 현상을 유지하지 못하는 것은 박테리아가 아니라 바이러스다. 아마 얘기가 들어갔을 것이고, 새로 찍어낼 때(이미 찍어냈을 것이다)는 바뀌어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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