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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의 루시, 외로움와 연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바닷가의 루시』

by ENA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가 루시 바턴을 주인공을 삼은 작품은 『내 이름은 루시 바턴』, 『오, 윌리엄!』에 이어 『바닷가의 루시』가 세 번째다. 어린 시절의 가난과 폭력으로부터 탈출해 뉴욕에 거주하면서 성공한 소설가가 된 루시 바턴이다. 대학 시절 조교였던 기생충학자 윌리엄과 결혼했고, 두 딸을 두었다. 그러나 윌리엄은 바람을 피웠고, 루시 역시 맞바람을 피우며 이혼했다. 윌리엄은 세 번째 아내가 딸을 데리고 나가버렸고, 루시는 자신을 정말 사랑하는 첼리스트 데이비드와 사별했다. 그리고 코로나19가 닥쳤다.


윌리엄은 루시를 살린다며 뉴욕에서 데리고 나와 메인주 크로스비로 옮겨 함께 산다. 바닷가 마을이었고, 집은 절벽에 있었다. 둘은 처음에는 따로 자지만, 몇 달 후 그들은 한 침대에서 자게 된다.


코로나19의 상황이 펼쳐진다. 우리도 익히 알고 있는 낯선 풍경들, 그리고 낯선 감정들(이 역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다). 그리고 그런 풍경과 감정 속에서 겪어야 했던 단절감. 그러나 그럼에도, 아니 그러했기에 그리운 사람들. 그래서 단절 속에서 연결, 연대가 이뤄진다. 많은 끈이 끊어지기도 했지만, 과거의 어느 시점에 끊어졌던 끈이 연결되기도 했다.


그런 상황에서 루시가 느끼는 감정들은 세밀하다. 엘리자베스는 스트라우트는 그 감정들을 툭툭 던져놓는 듯 하지만 결국은 하나도 놓치지 않고 있다. 물론 거의 과거를 향하는 것이긴 하지만, 과거 없어 어찌 현재가 있을까. 또 미래는 알 수 없는 것이다. 나는 루시가 느낀 것, 결국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가 쓴 “이 삶에서 앞으로 우리를 기다리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은 선물이다.”(290쪽)라는 문장을 읽으며 울컥 했다. 미래를 알면 겁이 나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 같다.


종종, 아니 상당히 자주 “이해한다”, 혹은 “알 것 같다”는 말을 한다. 그런데 정말 루시는 윌리엄의 말을, 생각을, 느낌을, 딸 크리시와 베카의 마음을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 결국은 “모두 꼭 자신처럼 생각한다”는 깨달음은 무얼 의미하는 것일까? 우리가 다른 사람을 이해한다고, 알 것 같다고 하는 것은, 내가 그렇다고 여긴다는 의미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닐까? 결국은 우리는 이기적이고(루시의 언니가 루시를 생각하는 것처럼), 또 의심하면서도 꼭 안기는(루시가 윌리엄에게 안기듯)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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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움은 없다. 그런데 몹시도 울컥 거리며 읽었다. 익숙한 감정, 내지는 익숙해질 감정에 몹시도 마음이 아팠다. 루시 바턴이 주인공인 작품으로 세 번째라고 했지만, 윌리엄과 루시가 옮겨가 살게 된 마을 크로스비는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작품의 또 다른 주인공인 올리브 키터리지의 삶의 배경이 되는 곳이며(올리브는 이 작품에서 간접적으로 등장한다), 역시 또 주인공인 버지스 형제 중 밥 버지스가 살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밥은 루시와 친구가 되어 함께 산책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는 자신 작품의 주인공들은 외롭게 두질 않는다. 어쩌면 그들이 몹시도 외로움을 타는 사람들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앞서도 얘기했지만 코로나19가 배경이다. 코로나19가 우리에게 가져온 많은 물질적, 정신적 변화는 앞으로 많은 작품에 담길 것이다. 우리는 그 시절을 반추할 것이다. 아니, 우리는 아직 그 시절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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