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운, 《통역사의 일》
이 책의 내용과 얼마나 관련이 있는 것으로 받아들일지는 모르겠지만 내 얘기를 잠깐 해보겠다. 나는 책을 읽고, 그 목록을 excel로 기록해둔다. 저자 이름, 책 제목, 출판사, 읽은 날짜, 책이 어디서 온 것인지(구매한 것인지, 도서관에서 대출한 것인지 등등)과 함께 꼭 기록하는 게 있다. 바로 번역서의 경우 옮긴이의 이름이다. 그만큼 옮긴이를 중요하게 여기는 편이다. 옮긴이를 검색해서 최근에 번역한 책을 찾아 읽기도 한다. 그 옮긴이의 번역을 좋아한다기보다는 그의 선구안(선책안이라고 해야 하나?)을 더 믿는 편이긴 하지만 말이다. 정말 매끄러운 번역을 보면(그게 원어로 그런 표현이었는지, 옮긴이가 잘 옮긴 표현인지는 보면 느낌이 온다) 다시 표지로 돌아가 옮긴이가 누군지 확인한다. 책에서 번역은 정말 중요하다.
물론 이 책은 번역가라기보다는 통역사의 책이다. 그 구분이 아주 명확하지는 않고, 또 저자 역시 번역 일을 하는 장면을 여러 차례 쓰고 있으므로 그냥 퉁 치고 내가 번역가를 존중하듯 통역사에 대해서도 비슷한 경의를 표할 수 있다고 해도 괜찮을 것 같다. 저자는 선망의 대상이지만, 존중받지는 못하는 직업이라고 하지만, 적어도 나는 아니라고도 하고 싶다.
직업상 국내외 학회와 심포지엄을 적잖게 참석한다. 그런 자리의 발표와 질의가 영어로 이뤄지는 경우가 허다한데, 통역사를 쓰는 경우는 없다. 많은 이들이 외국 유학 경험이 있거니와, 과학에 대한 발표가 다소 정형적이다보니 대부분 알아듣는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가끔 궁금할 때가 있다. 나도 발표의 내용을 완벽히 알아듣지 못하는데, 다른 이들은 얼마나 알아듣고 있을까? 주요 내용을 잘못 알아듣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저 발표자의 미묘한 느낌을 나는, 다른 사람은 얼마나 잘 파악하고 있을까? 궁금해지면서, 통역사가 있어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솔직히 하곤 했다. 통역사 없는 이 상황은 어쩌면 지적 허영 같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조금 들면서.
저자는 통역사다. 기자 생활도 했었다. 저자에게는 통역사라는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넘쳐 난다. 그래서 통역사를 업수이 여기거나 잘못 알고 있는 이들에 대해 섭섭하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직업에 대한 자부심을 잃지 않고 버티어 왔다. 그 자부심은 단순히 영어를 잘 하는 데 대한 것이 아니라, 소통을 매개하는 직업으로서의 보람에서 오는 것임을 여러 번 강조한다. 통역사가 굳이 필요할까, 혹은 전문 분야라 잘 해낼까, 하는 의구심을 가진 의뢰자에게서 결국은 고맙다는 칭찬을 받아내는 장면들은(물론 거기에는 노력이 필요하다) 통역사로서의 자부심이 어디에서 올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면서 어려움을 토로한다. 그런데 통역 자체에서 오는 어려움은 심각한 것이 아니다. 그건 노력한다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 관계에서 오는 어려움은 참 쉽지 않다는 것을 이 책에서도 알 수 있다. 특히 같은 직업을 가지고 있는 이들 사이의 갈등은, 어느 직업에서나 존재하지만 참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실 그런 얘기들을 토로하는 부분에서는 솔직히 걱정이 됐다. 만약 그들이 이 책을 읽으면 그게 자신에 대한 얘기인 줄 알텐데, 그 땐 어떻게 될까, 하는.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그런 말을 한 사람은 그 일을 잊었을 가능성이 높다. 내가 상처를 받은 말은 오래 남는 데 반해, 상처를 준 말은 잘 기억에 남지 않는 법이니까. 그런 점에서 늘 조심할 수 밖에 없다.
이 책은 대부분 통역사로서 겪은 경험담을 옮긴 책이지만, 또 전적으로 생활인으로서 살아가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누구든 자신의 직업에서 이만한 얘기가 없을까 싶기도 하고, 그런 점에서 자신을 뒤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주기도 한다. 어마어마한 성공담은 아니지만, 그래도 자신의 자리에서 조금씩 성공을 일구어나가는 사회인으로서 그녀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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