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볼모어, 《염증에 걸린 마음》
류머티즘관절염에 걸리면 우울증이 온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의사를 포함해서) 당연하다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몸이 아픈데 마음이 어떻게 그대로일 수 있겠는가, 하는 식이다. 그래서 류머티즘관절염 환자에 대해서는 류머티즘관절염에 대한 치료를 하지 우울증에 대해선 거의 무시하고, 그에 대한 치료는 하지 않는다. 신체는 신체고, 정신은 정신이라는 생각이 굳게 박혀 있는 셈이다. 신체와 정신이 연결되어 있더라도 그냥 몸이 아프니 그에 대해 그렇게 느낀다고 여길 뿐이다.
하지만 에드워드 볼모어를 비롯한 일군의 면역정신의학 또는 신경면역학자들은 생각이 다르다. 우울증을 비롯한 정신질환이 염증 때문에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그건 단순한 관련성이 아니라, 신체에서 일어난 화학적 변화가 정신적인 변화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항염증치료를 통해서 정신질환도 완화, 혹은 치료할 수 있다고 믿는다. 《염증에 걸린 마음》은 바로 그런 ‘우울증에 대한 참신하고 혁명적인 접근’을 다룬 책이다.
이런 관점은 우선 관찰에서 비롯된다. 염증에서 비롯된 신체 질환에 걸린 사람들이 상당수 정신적인 문제를 호소한다는 것이다. 앞에서 얘기한 대로 지금까지 많은 의사들이 이를 당연한 것으로 무시해버린다. 이는 (에드워드 볼모어는) 데카르트까지 소환하여 그로부터 이어지는 이원론에 사로잡힌 결과라 본다. 그러나 이는 당연하므로 무시해서는 안되는 것이란 게 에드워드 볼모어를 비롯한 신경면역학자들의 생각이다.
우울증에 대한 치료약은 나와 있다. 프로작이라고 하는 대단히 성공한 약이다. 세로토닌 재흡수 저해제다. 우울증이 세로토닌의 부족에 따른 것이란 진단 아래, 세로토닌이 신경계에 오래 남을 수 있도록 하는 약이다. 약을 개발하는 데 있어 타겟을 정하고, 그것에 맞는 약을 개발한 대단히 현대적인 개발 과정을 거친 약이다. 그러나 문제는 뇌 속의 세로토닌의 양을 정확히 측정할 방법이 없고, 정말 세로토닌이 진짜, 모든 것의 원인인가에 대한 의문이 남아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 프로작을 비롯한 우울증 약이 오히려 자살율을 높인다는 얘기도 적잖게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박성규의 《약국에 없는 약 이야기》).
또한 염증에 관한 수치(대표적으로 C-반응성 단백질 농도)를 측정하는 연구를 통해 이 수치와 우울증을 비롯한 정신질환 사이의 연관성이 밝혀지고 있다. 아직은 이게 인과 관계인지, 단순한 연관 관계인지에 대한 논란이 있지만, 여러 연구들이 명확한 인과성을 밝혀내고 있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즉, 우울증을 비롯하여 조현병, 알츠하이머와 같은 병들은 단순하게 마음이나 뇌에 문제가 생긴 것이 아니라 우리 몸의 염증에 대한 반응이며 이 염증에 대한 치료가 정신질환에 대한 치료의 미래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아직 이 분야는 가야할 길이 멀다. 왜 염증이 우울증과 같은 정신질환과 연계되는지에 대한 질문에 대한 대답도 그리 정교하지 못하고, 그렇다면 어떻게 치료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아직 속시원한 답변을 하지 못하고 있다(이게 이 책의 가장 아쉬운 점이다. 새로운 관점은 제시하지만 해결책은 뚜렷이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아직 설익은 상태란 얘기다). 하지만 이러한 관점은 정신질환에 대해 새로운 접근법을 가능하게 한다. 이는 오랫동안 우리의 정신 세계를 규정하고 가두었던 데카르트의 이원론에서 벗어나 인간의 질환에 대해 폭넓게 생각하게 할 것이고, 새로운 치료법을 개발할 수 있는 가능성을 높일 것이다. 새로운 관점은 새로운 돌파구일 가능성이 높은 법이다.
http://www.yes24.com/Product/Goods/90084146?OzSrank=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