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책의 역사, 과학 지식의 역사

브라이언 클레그, 『책을 쓰는 과학자들』

by ENA

과학의 역사를 기술하기 위해서는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과학자의 기록이 있어야 한다. 과학의 역사를 기술하는 데 필요한 과학자의 기록, 과학 활동(발견이든 발명이든)에 대한 기록의 성격은 과거와 지금은 매우 다르다. 지금 과학 활동을 평가하는 데는 거의 논문 위주다. 그러나 과거에 어떤 과학적 발견, 발명이 있었는지를 알아내기 위해서는 거의 전적으로 책, 내지는 책에 비견되는 기록에 의존한다. 지금의 과학에 관한 책은 자신의 과학적 발견을 알려서 평가받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과학적 발전을 종합하고, 의미를 전달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니까 ‘과학에 관한 책’의 의미나 성격은 과거와 현재는 매우 다른 셈이다.


책의 우리말 제목, ‘책을 쓰는 과학자들’을 접했을 때의 느낌은 전적으로 현대의 과학책에 한정해서 받아들였었다. 과학자들이 왜 논문만이 아닌 책을 쓰는지에 대한 책으로 생각했었다는 얘기다. 그건 내가 책이란 걸 쓰고 출간하면서 가지게 된 생각과 비교해보기 위한 의도, 혹은 그들에 기대어 나름대로 이유를 찾기 위한 의도도 있었다.


그런데, 책 표지에 적혀 있는 원제, “Scientifica Historica”는 이 책이 그런 내 원래의 생각과는 좀 다르다는 것을 알려준다. 옮긴이는 이를 “과학 지식의 역사”라 소개하고 있고, 이 책의 내용이 바로 그런 것이기도 하다. 다만 역시 앞에서 지적한 대로 책과 책에 비견되는 기록물만이 과거의 과학 지식을 구성한다면, 지금의 과학책은 좀 성격을 달리한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러니까 어느 시점의 과학책에 관한 얘기는 기존의 과학사와 거의 비슷하지만, 어느 시점 이후부터는 그것이 일치하지 않는다. 지금의 과학책은 이른바 메타과학적 성격을 갖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뒤로 갈수록 흥미 있게 읽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앞부분이라고 흥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기존의 과학 교양서와 크게 다르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대신 뒤로 갈수록 책과 책의 내용에 대한 평가는 다른 데서는 잘 보지 못했던(물론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것들이고, 특히 아주 최근의 책들에까지 평가의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는 점이 눈을 번쩍 뜨게 했다(아마 우리말 제목 “책을 쓰는 과학자들”도 이 뒷부분을 더 염두에 두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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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흥미로운 것은 최근의 과학책에 대한 냉정한 시선이다. 내가 읽은 책들에 대한 얘기를 좀 모아보면,


“『이중 나선』은 이 발견에 관한 이야기를 전하는 책이지만, 내용보다는 저술 방식이 교과서와는 크게 다르다는 점이 훨씬 중요한 특징이다. ... (중략) ... 이 책은 과학자가 자신의 연구를 직접 책으로 쓰면 어떤 문제가 생길 수 있는지도 여실히 보여 준다.”


“『우연과 필연』에서 자크 모노가 제시하는 비전은 철저히 과학적이며 냉정하다. ... (중략)... 과학적인 성취로 보자면 모노가 엑스타인보다 훨씬 앞섰다고 할 수 있으나, 독자의 인간적인 특성을 고려하는 능력은 엑스타인보다 부족했다.”


“앨빈 토플러가 『미래의 충격』을 집필할 때 이미 일회용 플라스틱은 규탄의 대상이었는데도 그는 일회용품이 갈수록 더 많이 쓰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과학적인 이론에 확고한 무신론이 합쳐진 시각으로 진화론을 전면에 꺼내 든 리처드 도킨스의 책은 종교 단체들이 진화론에 느끼는 거부감을 건드렸다. 이와 어울리지 않게도, 도킨스는 옥스퍼드대학교에서 수년간 과학 대중화 사업의 담당 교수로도 일했다. 『이기적 유전자』를 포함한 그의 저서는 과학의 대중화에 분명 보탬이 됐지만, 특유의 공격적인 방식은 그런 노력에 오히려 큰 걸림돌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 (중략) ... 『이기적 유전자』가 일부 국가에서 국민의 인식에 전반적으로 큰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2017년 영국 왕립학회의 여론조사 결과 가장 영향력 있는 과학책으로 뽑힌 건 의아한 일이다.”

올리버 색스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와 아르망 르로이의 『돌연변이』에 대해선, “이런 내용은 자칫 책으로 만든 ‘엽기 쇼’가 될 이험이 있다. 아르망 르로이의 저서 『돌연변이』는 그런 점에서 더욱 아슬아슬하다. ... (중략) ...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는 책이 다루는 주제가 질병이라 각 환자에게 쏠릴 수밖에 없지만, 색스도 환자의 사례를 노골적으로 이용하기보다는 우리 뇌에 어떤 기능이 있는지를 설명하는 자료로 삼았다. 그 결과 의학 분야의 다른 어떤 책보다 훨씬 폭넓은 대중의 사랑을 받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역사』에 대해, “『시간의 역사』는 그리 두꺼운 책이 아니다. 그래서 구입하는 사람은 많아도 끝까지 다 읽는 사람은 별로 없기로 유명한 책이라는 사실이 의아할 수도 있다. ... (중략) ... 위대한 과학책의 필수 요건은 과학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지식을 잘 전달하는 것이므로, 숱한 독자가 완독을 포기한 책을 위대한 과학 도서라고 소개하기가 좀 난감하기도 하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에 대해, “1980년에 TV 시리즈로 방영되어 나온 『코스모스』인데, 이 프로그램과 책에 나오는 과학의 역사에는 명백히 허술한 부분이 있다.”


빌 브라이슨의 『거의 모든 것의 역사』에 대해, “2003년에 출간된 빌 브라이슨의 책 『거의 모든 것의 역사』는 이 방식을 가장 극단적으로 활용한 예다. 이 책에서 브라이슨은 아는 건 별로 없어도 호기심 많은 일반인을 자처하며 여러 과학자와 만나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다양한 주제를 깊이 파고든다. 그 결과로 나온 『거의 모든 것의 역사』는 지금까지 출판된 현대의 모든 과학책을 통틀어 가장 많이 팔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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