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혁명은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전복

박재용, 『아리스토텔레스와 그의 전복자들』

by ENA

과학작가 박재용은 16, 17세기 서양 근대 과학혁명은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전복의 관점에서 이 책을 썼다. 그러니까 이 책은 문명 과학혁명에 대한 책이긴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를 중심에 놓고 있는 책이기도 하다. 질문은 우선 왜 아리스토텔레스인가?에서 시작해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이전의 학자들에게 영향을 받았으므로 이전 그리스 철학자들의 사상을 언급하고는 있지만, 역시나 아리스토텔레스가 어떤 것을 정립해놓았는지가 이 책을 이해하는 데 핵심 순서라고 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야말로 ‘모든 것의 이론(Theory of Everything)’을 정립한 인물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논리학, 자연학, 형이상학, 윤리학, 정치학 등 당대에 자신이 언급할 수 있는 모든 것에 대해서 다루었고, 그것들은 논리적으로 잘 연결했다. 아리스토텔레스 이전에 플라톤이 있었고, 그 이전에 많은 그리스 철학자들이 있었지만, 아리스토텔레스만큼 전면적으로 서양의 사상에 영향을 미친 인물은 없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완벽한 천상계와 불완전한 지상계를 구분했다. 지상계가 4원소(물, 불, 흙, 공기)로 이루어져 있는 반면, 천상계는 완전한 원소인 에테르로 이루어져 있다고 여겼다. 또한 원운동을 완벽하다고 여겨 모든 천체가 원운동을 한다고 했다. 그는 사물의 존재와 변화를 설명하기 위해서 4가지 원인을 제시했는데, 그것은 그 유명한 질료인, 형상인, 작용인, 목적인이다.


운동에 대해서는 접촉을 통해서만 일어나므로 진공이란 있을 수 없다고 했다(“자연은 진공을 싫어한다”). 그는 또한 생물학자이기도 했는데, 레스보스섬에서 많은 생물들을 관찰하고 기록했다. 그는 ‘생명의 사다리’(또는 ‘존재의 사슬’)이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동식물에 위계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생명에 대한 생각도 목적론적이었다. 무엇이든 존재하는 목적이 존재한다고 했으니, 생물의 모든 기관이 그러해야 했다(“자연은 무익한 것을 만들지 않는다”). 화학에 대해서도 혼합과 결합의 원리를 통해서 사물이 생성된다고 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실험이란 무용하다고 여겼다. 이는 고대 그리스 자연철학자들의 보편적 생각이기도 했다. 자연의 본성은 관찰과 논리적 분석으로 가능한 것이지, 실험, 즉 인위적 조작은 자연을 왜곡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이를 배격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기독교가 득세하면서 차츰 잊혀졌다. 그의 책과 사상은 이슬람에 의해 번역되어 맥을 이어오다 중세 후반 이후 그의 사상을 기독교와 접목시킨 토마스 아퀴나스 등에 의해 화려하게 복귀하고, 서양 철학, 자연학의 근본이 되었다. 이를 거부하는 것은 신성모독이나 다름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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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과학혁명은 바로 이 아리스토텔레스를 극복, 전복하는 것이었다(이게 저자의 생각이고, 이 책의 주제다). 길버트, 베이컨 등의 실험에 대한 강조를 비롯한 경험론, 데카르트의 사유와 방법이 근대 과학혁명의 철학적 근본을 이루었다면, 튀코 브라헤, 요하네스 케플러를 이은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오의 천문학 혁명이 있었다. 그들은 천상계와 지상계의 구분을 없앴으며, 원운동의 절대성을 극복해냈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란 것은 물론.


역학 혁명은 외부로부터 힘이 지속적으로 작용하지 않아도 물체가 운동할 수 있다는 것, 따라서 진공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밝혀내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윌리엄 길버트는 지구가 하나의 커다란 자석이라는 것을 실험적으로 밝혀냈으며, 갈릴레오는 관성의 개념을 끄집어 냄으로써 천상의 운동과 지상의 운동을 통일할 기반을 마련했다. 그리고 뉴턴이 나타났다. 뉴턴은 운동과 힘의 원리를 밝혀냈고, 광학 연구를 통해 빛의 입자성을 증명해냈다(물론 이후 빛이 파장으로서의 성질도 가지고 있음을 밝혀졌지만). 화학에서는 라부아지에가 원자설에 근거해서 근대 화학혁명의 종지부를 찍었다.


끝으로 저자는 생물학 혁명을 이야기한다(생물학 혁명은 잘 쓰지 않는 용어이긴 하다). 생물학 혁명은 베살리우스의 해부학, 하비의 혈액순환 발견, 현미경을 이용한 훅의 세포, 레이우엔훅의 미생물 발견, 린네의 분류법 체계화 등이 요소로 설명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존재의 사다리’ 개념을 극복하는 것이기에 결국엔 다윈이 나타나야만 했다. 종은 고정불변하지 않으며, 생명에 위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존재 이유 역시 목적이 없다.


아리스토텔레스 극복을 키워드로 우리의 현대로 바로 이어지는 근대 과학혁명을 이해하는 것은 그렇게 독창적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이를 일관되게 서술하는 것은 쉽게 보지 못했던 것 같다. 근대 과학혁명을 보다 명쾌하게 이해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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