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준 《메이저리그 레전드》
야구에 대해서 어디서부터 얘기해야 할까. 선린상고-경북고의 라이벌 대결에 흥분했던 어린 시절 얘기부터? (그 당시 선린상고의 박노준의 야구 아이돌이었다) 1982년 이종도의 만루홈런으로 시작된 한국 프로야구 얘기부터? (나는 그 경기에서부터 MBC 청룡 팬이 되었고, LG 트윈스까지 40년 동안 응원 팀을 바꾸지 못했다) 1990년대 박찬호의 메이저리그 경기를 숨죽이며 보았던 대학원 시절 얘기부터? 아니면 류현진의 능글맞은 투구에 환호했던 얘기부터?
어찌 되었든 나는 야구팬이다. 좋아하는 팀이 암흑기에 있으며 차라리 보지 않는 걸 택한다고, 절대 좋아하는 팀을 바꾸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흘끔흘끔 성적을 쳐다보고 가끔 벌어지는 승리에, 누구 승리투수인지, 누구 결승타를 치고 공헌을 했는지를 체크하는. 지금은 컴퓨터로 야구 경기 중계를 무음으로 해놓고 책을 읽는. 물론 주로는 우리나라의 프로 경기를 보지만, 어쩔 수 없이 메이저리그의 경기 결과를 확인하고, 지금은 누가 잘 던지고, 잘 치는지를 확인하는.
몇몇 빠뜨리지 않고 읽은 야구 칼럼이 있다. <백종인의 야구는 구라다>도 있고, 이창섭 기자의 글도 있고, 송재우 해설위원의 글도 있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가강 열독하는 글은 뭐니뭐니해도 김형준의 칼럼이다. 백종인의 칼럼이 다소 감성적이라면 김형준의 칼럼은 매우 수리적이고, 이성적이다. 선수들의 가치와 활약을 수치로 풀어내는데, 그 수치가 메이저리그 역사상 어떤 위치를 점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김형준의 특기다. 그의 해설은 특히 메이저리그 역사에 대한 풍부한 지식은 상황에 맞게 쉽게 쉽게 튀어나온다. 경기를 해설한다기보다 야구를 해설한다는 느낌. 그런 해설도 좋다.
김형준의 《메이저리그 레전드》는 미국프로야구 140년의 전설적인 야구인들에 관한 책이다. 모두 74명을 다루는데, 이중 둘은 선수가 아니다(최초로 흑인 재키 로빈슨을 메이저리거로 만든 브랜치 리키와 ‘악의 제국’을 건설한 양키스 구단주 조지 스타인브레너). 나머지 선수들 중에는 메이저리그에 들지 못한 선수도 있다. 그들의 실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인종의 벽에 막혀 재키 로빈슨 이전에 니그로리그에서 활약했던 새철 페이지와 같은 이들이다. 그러나 대부분은 프로야구 초창기에 그야말로 전설적인 활약을 펼쳤던 이들에서부터 이 책이 나온 2011년 당시의 레전드가 되어가던 이들. 그러니까 당시까지는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지 않은 이들, 이를테면 켄 그리피 주어니, 랜디 존슨, 그레그 매덕스, 톰 글래빈, 존 스몰츠와 같은 메이저리그가 우리나라의 TV에 본격적으로 중계되던 시절에 대스타들까지, 그리고 일본인으로, 한국인으로 메이저리그를 개척한 노모 히데오와 박찬호까지를 다루고 있다.
매우 전투적으로 야구를 전쟁처럼 치렀던 이들도 있고, 선수 생활 내내 단 한번도 화를 내지 않으면서도 최고의 활약을 펼쳤던 이들도 있고, 불꽃 같은 활약으로 단시간에 어마어마한 인상을 남기고 부상으로 내려간 이들도 있고(예를 들어 샌디 코팩스), 오랜 시간 동안 꾸준하게 활약하여 끝내는 전설이 된 이들도 있고, 온갖 팀을 옮겨 다니면서도 활약을 멈추지 않은 이들도 있고, 한 팀에서 20년 이상 자신의 수준을 유지하며 돈의 유혹에 굴복하지 않았던 이들도 있고, 부상을 이겨내고 재기에 성공하여 전설의 역사를 써내려간 선수들도 있다. 전쟁에 기꺼이 참전하고, 돌아와서 아무렇지 않게 이전의 활약을 되풀이한 선수들도 있다. 이런 선수들이 있었기에 메이저리그는 지금도 꿈의 무대인 것이다.
이미 10년이 된 책이지만, 전설이 된 선수들이 달라지는 10년 동안 달라지는 것이 아니란 점에서 여전히 현재성을 지닌 책이기도 하다. 물론 그 이후 10년 동안 떠오른 스타들, 레전드가 될 것이 분명한 선수들이 몇 명 빠진 것은 아쉽다(금방 떠오르는 이들을 거명하면, 커쇼가 있고, 이치로가 있고, 트라웃이 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김형준의 칼럼을 읽을 수 있다. 그 칼럼들은 이 책에 덧붙이는 것이지, 이 책을 배반하는 것은 아니다. 메이저리그를 알기 위해서는 다양한 방법이 있겠지만, 지금까지 활약한 전설 같은 이들과 그들의 가치를 아는 것이 가장 기본적이 게 아닐까?
600쪽이 넘는 책을 정말 단숨에 읽었다. 그만큼 야구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김형준의 글도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더 좋은 것은 그가 LG 트윈스 팬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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