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근, 『과학 용어의 탄생』
우리의 생각은 언어에 상당 부분 좌우된다. 어떤 말을 쓰느냐에 따라서 우리 사고의 방식과 방향이 정해지고, 수준마저도 어느 정도 규정된다. 과학의 용어도 마찬가지다. 과학에서 쓰이는 용어가 원래부터 있었던 것이 아닌 만큼, 어떤 현상이나 어떤 이론, 어떤 물체, 어떤 분야를 부르는 용어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쓰이는지에 따라서 그것을 바라보는 관점도 조금은, 아니 상당히 많이 달라질 수 있었다. 우리가 쓰는 과학 용어는 그런 점에서 역사적이며, 선택적이었다.
동아시아의 경우는 그게 더 심했다. 근대 이후의 과학은 우리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던 만큼 내용은 물론 용어도 외부로부터 주어졌다. 그런데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용어를 만들어야 했다. 우리의 과학에 대한 생각, 내지는 과학 활동은 그 용어의 한계 내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서양에서 만들어진 용어를 과거에 쓰던 말을 가져다 쓰기도 하고, 새로이 조합하기도 하고, 새로이 만들기도 하면서 과학을 이해하기 위해 부단히도 애쓴 것이 동아시아 과학 활동의 시작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동아시아에서도 우리의 경우는 더욱 의존적일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과학이라는 활동은 물론 용어마저도 서구에서 직접 가져온 것이 아니라 대부분은 일본, 일부는 중국을 거쳐서 받아들였다. 그런 까닭은 일본에서 만들어진 용어를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아주 드물게 그것을 변형해서 사용해왔다. 우리가 스스로 과학의 내용을 이해하고, 그것을 토대로 용어를 만들어 사용한 사례는 매우 드물다. 지금도 그렇다(물론 일본의 것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의미가 아니라, 지금은 그냥 영어를 그냥 쓰는 경우가 많다).
“오늘날 한국에서 사용되는 과학 어휘는 대부분 메이지 시대 일본에서 만들어진 일본제 조어들이다. (중략) 한자문화권에 속하는 한국, 중국의 지식인들에게 번역이라는 수고로운 과정을 덜어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본제 어휘의 수용은 식민지 현실에서의 불가피한 과정이었다는 점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다. 근대 학문에 대한 깊은 고민과 성찰을 지속할 여유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서양학문을 직접 조선의 전통학문 속에 번역해 낼 기회도 충분히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김성근의 『과학 용어의 탄생』은 과학 용어가 서구에서 만들어지고, 그것이 동아시아에서 해석되고, 번역되는 과정, 그리고 그것을 이해하고 전파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매우 소중한 책이다. 야나부 아키라의 『Freedom, 어떻게 自由로 번역되었는가』(https://blog.naver.com/kwansooko/221876601825)나 야마모토 다카미쓰의 『그 많은 개념어는 누가 만들었을까』(https://blog.naver.com/kwansooko/223167858984)와 같은 일본에서 나온 책은 있지만, 또 단어에 연원 등을 따진 우리나라 국어학 관련한 학자들의 책은 종종 있지만, 이처럼 우리나라에서 과학 용어의 형성과 전파를 따지고, 이를 통해 사유의 형성을 관련시킨 책은 드물다.
김성근이 제시하고, 연구한 용어들은 몇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일단 나눌 수 있는 게, 일본 유래인 용어와 중국 유래인 용어다. 우리가 쓰는 과학 용어 가운데 대부분은 일본에서 온 것이고, 일부만 중국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원래 중국 문헌에서 쓰고 있던 용어더라도 일본에서 새로운 의미로 쓰게 된 것들도 일본에서 유래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과학이라든가, 자연과 같은 용어들이다. ‘행성’과 같은 용어는 일본에서는 (지금도) ‘혹성’이라고 하지만, 중국과 우리나라에서는 ‘행성’이라고 한다는 점에서 특이한 예이다.
용어의 의미가 서구에서 쓰는 것과 거의 대응해서 만들어진 것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예를 들어 ‘과학기술’이라는 용어는 영어로는 항상 ‘Science and Technology’라고 중간에 ‘and’가 반드시 들어가지만, 동아시아에서는 그렇지 않다. 과학과 기술이 서로 다른 경로를 통해 발달하면서 서로를 추동시켜온 서구의 전통과는 달리, 동아시아에서는 이 두 가지를 거의 동시에 받아들이면서 그 둘을 분리시키는 것이 의미가 없었던, 혹은 그럴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초기부터 용어의 번역어가 정립된 경우도 있었지만, 초기에는 여러 용어들이 경합을 벌이다 나중에야 정립된 용어들도 있다. 사실 대부분이 후자의 경우이긴 한데, 철학이라는 용어가 정립되는 과정이라든가, 물리학이라는 용어가 확정되는 과정은 좀 다르다. 철학과 같은 용어는 그나마 자연스러운 과정을 거치면서 우세해진 용어가 정립되었다면, 물리학이라는 용어는 일본의 물리학자들이 투표를 통해서 확립했다는 점에서 다른 것이다. 또한 화학이라는 용어와 관련해서도 매우 흥미롭다. 초기에 네덜란드어 .chemie를 ‘세이미’로 읽고 이를 한자어로 대응해서 ‘사밀(舍密)’이라고 했다고 하는데, 이 용어는 오랫동안 끈질기에 살아남아 화학이라는 용어와 끝까지 경합했다고 한다.
이 책을 통해서 다시금 생각해본 용어도 있다. 주관과 객관이라는 용어도 그렇고, 지동설과 천동설이라는 용어도 그렇다. 그리고 속도와 속력의 구분도 생각지 못했던 점이 있다. 특히 지동설은 태양중심설, 천동설은 지구중심설로 바꾸어 부르는 것이 낫지 않나 싶다(과거에 그런 적도 있다). 지구가 움직인다는 것이 자전인지, 공전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는 점 등을 감안하면 말이다(우리나라의 홍대용 등이 소개했던 지전설이 공전은 제외하고 자전만 의미했다는 것은 처음 알았다). 방향까지 생각하는 속도와 단지 정도만 파악하는 속력의 구분도, 한자어의 의미대로만 생각한다면 바뀌어야 한다고 하는데, 이제 와서 그건 쉽지 않을 듯하다.
이렇게 모든 용어가 그 용어를 어떻게 번역하는지, 어떻게 사용하는지, 어떤 관점에서 얘기하는지에 따라서 매우 다른 의미를 지니는지 많은 정보와 함께 생각도 많이 할 수 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