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쓰시에 마사시, 『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를 읽고, 찾아 읽게 되었다. 뭔가 비슷한 느낌. 옮긴이가 바뀌었어도 그런 느낌이 든다는 건, 마쓰시에 마사시 고유의 것이라는 걸 의미할 터다. 아련한 느낌, 다다르지 못하고 비껴가면서도 놓지 못하며 그리워하는...
『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에는 마쓰시에 마사시의 경력이 더 짙게 드리워져 있다. 출판사 편집자. 그게 주인공의 직업이다. 그리고 그게 마쓰시에 마사시가 오십 초반에 퇴직할 때까지 가졌던 직업이다. 그리고 여기에도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와 같이 건축과 인테리어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다. 관심이 아니고 안목일까?
마흔 여덟의 나이에 이혼한 남자 주인공은 아내에게 집을 주고 나오기로 한다. 그가 원하는 조건은 ‘자연림이 남아 있는 공원이 근처에 있을 것. 나이를 많이 먹은 거목이 우뚝 솟았고 놀이기구 따위 없는 살풍경한 공원. 그리고 인테리어 공사를 새로 할 수 있는 오래된 단독주택일 것’. 이 까다로운 조건을 만족하는 집이 나온다. ‘Kingdom of Sorrow’.
동경하던 단독주택에서의 삶은 직장 동료가 얘기하듯 ‘우아한 삶’인 듯 아닌 듯하다. 다만 외로울 지는 몰라도 마음은 편한 삶이었다. 그리고 이혼 전에 헤어진 옛 연인과도 우연히 재회한다. 떨리는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마흔여덟의 나이에 혼자가 된 남자의 삶이 괜히 동경스러워지는 설정이다(전혀 그럴 생각이 없더라도 동경은 마음대로가 아닌가?).
몇 가지 사건이 지나간다. 뜻하지 않았던 일들이기에 삶의 경로에 분명 영향을 주었겠지만, 그 사건들은 그걸 겪지 않은 사람이라면 전혀 의식도 못하는 일들이다. 사실 우리는 그렇게 살아간다. 남들에게는 아주 사소한 일이 내게는 커다란 일이 되고, 그것으로 마음이 쓰이고, 상처받고, 위안받고...
소설의 끝을 상상하면서 읽게 되는데, 나는 남녀가 아쉬움을 뒤로 하고 헤어진다는 쪽에 가까웠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우아함을 포기해서 나는 다행스럽다 생각한다. 여자가 현명하다. 그것을 따르는 남자라서 다행이다. 더욱 동경하게 되는데... 소설은 소설이다.